.성장한 사람들의 결정적 행동에는 문화가 본성보다 지배적이다.
.문화를 자연적 본성에 따라서 설명하고 사회제도를 생물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는 위장된 과학적 설명에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러한 설명은, 무의식적 신비화과정을 거치면서, 지배계급의 특권을 정당화시킨다
.죽음은 하나의 총계이다. 죽음은 삶의 모든 사건의 흔적의 통계이다. 상처가 육체에 새겨지는 것과 같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사실들은 죽음에 뚜렷하게 새겨진다.
. 쾌락과 고통은 정서의 기본적 색조이며, 정서의 직접재료이다.
.육체적 고통은 공간속에 위치하고 순간순간 체험되지만 도덕적 고통은 시간과 관계가 있다.인간은 지난 일을 회상하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미래를 걱정 하기도 한다. 근심, 후회, 불안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형이상학적 불안과 치통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권투시합중에 두드려 맞는 주먹이 토론 중에 얻어맞는 적의에 찬 말보다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
. 육체적 고통과 쾌락은 육체와 관계있다. 도덕적 고통은 상상과 추억을 전제 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당성이 적다. 고통스러운 기다림이나 괴로운 추억같은 상상의 고통은 공상적 고통에 가깝다.
. 쇼펜하우어; 필요는 탐욕 대상의 결여이므로 모든 필요는 괴로움이며 소유의 쾌락은 괴로움의 부재로 환원된다. 괴로움은 적극적인 것이고 쾌락은 괴로움의 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 도스토엡스키; 고통은 자아의식의 근원이다.
. 도덕론자들은 고통을 통한 인격의 완성을 부각시킨다. 자기징계의 메카니즘. 고통은 영혼의 친구. 시련과 희생을 통하여 육신으로부터 떨어져서 순수한 정신이 된다.
. 밴담, 행복의 산식, 삶 전체에서 쾌락의 최대총계에서 고통의 최소총계를 제한 것.
. 장 라크르와, 즐거움은 리듬을 즐기는 것이다. 즐거움은 시간과 영원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 지루한 시간은 길고 무겁다.
.즐거움이 있는 곳에 창조가 있다. 창조가 풍부하면 할수록 즐거움은 더욱 깊어진다.
. 행복은 전체적이고 완전한 것이며 '존재의 무한한 즐거움'이다.
.흥분한 사람은 자기자신이 아니며 문자 그대로 자신의 밖에 있다. (e- motion)
. 정념에는 주인이 없고 정념은 자신의 격렬한 지배하에 있는 사람을 짓밟아 버린다. 정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연인에 대한 < 사랑으로 미쳐버린 사람>이다. 당신은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 우리가 세계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은 바로 우리의 감정 때문이다.
. 평범한 여자도 그여자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애인에게는 천상의 연인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꿈과 추억이 정념의 대상에 결정(crystalization)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념의 대상은 정념 밖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하찮은 것이다.
. 정념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뛰고 있는 약동을 고무시킨다.
. 억압된 욕망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 정념을 치료한다는 것은 해롭고 위험한 억압을 풍요한 승화로 대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 현재는 추상적인 경계선이 아니라 방금 지나간 과거와 금방 올 미래를 포함하는 지속의 일부 이다.
. 추억속에 고착되는 내 경험 요소들은 주관적 요인에 의해 선택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멜로디를 기억한다면 그 멜로디가 우리를 감동 시킨 때문이다. 우리가 중요한 추억을 고착시키는 것은 우리의 가치 때문이다. 우리가 단번에 또 영원히 추억으로 고착시키는 사건들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재산을 분해한 후 그 지점에 아이를 데리고가 아주 아프게 빰을 때린다. 아이는 이 지점을 결코 잊지 못한다.
. 부당한 징벌에 대한 놀라움과 반항은 어떤 본질적인 가치들에 대한 체험으로 추억속에 지속된다.
. 추억의 보존에 대한 고전적인 문제들
.뇌는 기억을 보존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들은 심리적 무의식 속에 보존된다) 기억들을 실행시키는 데 사용되고 현재 행동하는데 유용한 기억들을 추려냐는 데 사용된다. 뇌는 기억들의 보관 장소가 아니라 기억을 의식으로 불러오는 도구이다.
. 망각과 억압. 나는 아무것이나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과거중에서 참을 수 없는 것, 너무 고통스러운 것, 나의 초자아의 요구와 반대되는 것을 나의 명확한 의식으로부터 몰아내는 것이다.
. 망각은 자신의 과거를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배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기억의 주인이 아니라 괴거의 포로가 된 것이다. 망각은 심리적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망각은 도피하는 행동이며 연약과 비겁의 표현이다.
. 라쁠라스, 모든 분야에서의 발명은, 그때까지 따로 떨어져 있던 아이디어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 모든 발명의 기원에는 직관이 있다. 이러한 직관의 신비로운 근원은 정서이다.
. 이데올로기는 표상들의 체계, 관념들의 체계, 즉 어떤 사회계층이 법적, 도덕적, 종교적 관념들을 표현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체계이다. 그러나 이런 체계의 근원은 조심스럽게 은폐된 욕망과 이익이다. 인간은 진심으로 자신의 사유와 행동을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이익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형시키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 지배계층은 항상 그 계층의 이익의 요청을 일반적 이익 자체의요청인 것처럼 나타내려한다. 다른 계층을 착취하는 계층의 이익은 보편적이고 독립적인 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가면 안으로 숨으려 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는 항상 가면을 쓰려한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관계, 즉, 계층간 갈등은 사물교환이라는 위험성이 없는 중립적인 형태 속으로 은폐된다.(고용자는 그들의 노동력을 봉급과 교환한다.
마르크스, <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 사회적인 관계는, 결정한 사람들 자신을 위하여, 사물들간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의 옷을 입는다.>
. 세계와 나의 체험적인 관계에는, 또는 타자, 가치, 나의 죽음 등을 표상하는 나 자신의 방식에는 부분적이라고 반드시 상상적인 것이 있다. 인간과 인간의 생존조건에 대한 실재적인 관계와 인간이 관계를 체험하는 방식 사이에는 항상 어느정도의 여백, 어느정도의 간격이 있을 것이다. 욕망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와 착각을 짜내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이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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