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세계경제
<국가>
p.118
세계경제의 탄생
마르크스, “ 상품유통은 자본의 출발점이다.
주권이란 타국의 승인은 전제하므로 일국만의 것이 아니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도 일국만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세계경제’로서만 성립된다. 일단, 세계시장= 세계경제가 성립되면 그 누구도 그 외부에 있을 수 없다는 것.
p. 124
자본의 존재= 기업간 매수, 경영자의 해고
국가의 존재= 전쟁시
<산업자본주의>
p 142
산업자본에 상인자본으로부터의 근본적 단절을 발견하는 자는 생산과정에 주목하고 산업자본을 상인자본의 변형으로 보는 자는 유통과정에 주목.
마르크스 는 산업자본을 상인자본의 변형으로 보았다.
상인자본의 축적과정: 화폐-상품-화폐+알파 M-C-M'(M+⊿M)
* M-C-M'의 유통과정에서 발견하는 특수상품
=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생산과정인 상품, 즉 노동력.
*산업자본은 상인자본처럼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산설비를 갖추고 원료를 사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한 상품(C)을 파는 것.
*산업자본의 가치증식 과정;
M-C...P...C'-M'
화폐- 상품(설비+원료+노동력) ... 생산과정 ... 상품-화폐+알파
* 소비자로서의 프로레타리아
산업자본은 생산수단은 없고, 팔 것이라곤 노동력 뿐인 프로레타리아를 필요로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롤레타리아가 노동력을 팔고 얻는 임금으로 생산물을 사는 소비자라는 점.
총체로 보면 노동자는 그들 자신이 만든 것을 다시 산다고 해도 좋다.
‘노동자의 소비= 노동력의 재생산’은 자본의 증식과정의 일환으로 존재한다.
노동자 계급의 개인적 소비는 자본가에 있어서 불가결한 생산수단인 노동력 자체의 생산이자 재생산이다. 노동자가 그 개인적 소비를 자기 자신을 위해 하지 자본가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사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자본론)
p147
단순화하여 말하면, 상인자본이 외국(원격지)를 향해 있었던 데 반해, 산업자본은 국내에서 원격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생산= 소비하는 프롤레타리아다.
p148
산업자본은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고 그리고 소비자로서 그들의 생산물을 다시 산다는 광의의 ‘유통과정‘서 잉여가치를 얻는 것.
p.149
산업자본을 특징짓는 잉여가치는 마르크스가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른 것.
이것은 기술혁신에 의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동자에 의해 지불된 노동력 가치이상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얻어진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것을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p.149
자본은 화폐의 자기증식 즉 M-C-M'(M+⊿M)으로 존재한다.
잉여가치 ⊿M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상인자본이 공간적 가치체계의 차이로부터 잉여가치를 얻는데 반해, 산업자본은 기술혁신이나 신상품개발을 통해 가치체계를 시간적으로 차이화함으로써 잉여가치를 얻습니다. 그 결과, 산업자본은 존속을 위해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강요당합니다.
.. 산업자본은 세게를 문명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스스로가 존속하기 위하여 기술혁신이라는 운명이 지워진 것. 무익보다 유해한 기술혁신이나 차이화도 자본의 존속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p. 151
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하여 단순히 예속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개개의 생산과정에서는 예속된다고 할지라도 소비자로서는 그렇지 않다. 반대로 자본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에 대해 ‘예속’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의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은 최종적으로 생산물을 팔지 않으면 즉 생산물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획득하지 않는다면, 잉여가치 그 자체를 실현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사는 사람은 다른 자본이나 다른 자본 하에 있는 노동자이다. 각 자본은 이윤을 추구할 때 가능한 임금을 낮추려고 하거나 또는 장시간 일을 시키려한다. 그러나 모든 자본이 그렇게 한다면 잉여가치를 실현 시킬 수 없다.
개별자본이 이윤을 확대하여하면 할수록 총체로서의 불황은 격화된다. 자본 총체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실현시켜 불황탈출을 시도한 바, 소비사회의 내도 실현. 이데올로기가 끝났다? 계급사회의 종언?
-> 그러나, 오히려 산업자본의 잉여가치가 노동자가 만든 것을 노동자 자신이 다시 살 때 생기는 차액에 기초한다는 원리의 실현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제경제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을 스스로 구입함으로써 실현되는 자기 재생적 시스템이라는 것을 지적.
< 자본의 한계>
p154
칼 플라니, 시장경제가 ‘자기조정적 시스템‘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노동력, 토지및 화폐가 ’의제상품화’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노동력의 상품화에 저항하는 것은 공동체의 원리.= 경제적 정체의 원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기반 일 수도 있다. = 제3세계.
선진국의 불황= 내부에서 차이화의 포화점에 도달= 2세계에 대한 자본의 수출로 탈출.= 글로벌라이제이션. = 엄청난 노동력 상품= 노동자= 소비자의 발견.
자본의 한계:
산업자본은 사실상 상품이 되지 않는 두 가지가 상품이 되었을 때 성립했다. 즉, 노동력과 토지. = 자본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 노동력 과잉이나 부족이 경기순환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 자연을 상품화 = 생산은 폐기물의 생산 = 자연의 파괴를 초래.
* 자기증식적 자본은 그 자기증식이라는 운동을 중지할 수 없으므로 인류는 미증유의 파괴에 직면할 것.
< 자본에의 대항>
산업자본을 생산지점에서의 착취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본질을 거의 이해하기 힘들다. 자본제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과경영의 분리가 일어난다. 자본가는 단지 주주로서 생산지점을 떠나며 다른 한편으로 경영에서는 일반적인 관료제가 채용된다.
개별기업에서 경영자와 노동자의 이해는 일치한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종속적 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는 유통과정에서 소비자로서 나타난다. 그대 그들은 자본에 대하여 우월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p 161
계급투쟁을 주창하던 사람들이 전향하고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를 말하면서 자본제 경제에 대한 반항을 방기한다. 그러나 자본제 경제는 한층 글로벌하게 심화된 것일 뿐.
소비자란 프럴레타리아가 유통의 장에 나타났을 때의 모습이다. 소비자 운동이야 말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다.
유통과정에서 자본은 프롤레타리아를 강제할 수 없다. 일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은 있지만 구입하는 것을 강제하는 권력은 있을 수 없다.
그 같은 비폭력적, 합법적 투쟁에 대해 자본은 대항 할 수 없는 것.
<네이션>
네이션= 스테이트 (국민국가)가 생겨나는 것은 절대주권자가 타도되고 인민주권이 성립하는 단계. 그러나 그 기반은 절대주의 왕권시대. 즉, 봉건제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동체가 해체되고 일인 주권자아래 모두가 신민으로 동일한 지위에 놓여지는 단계가 기반.
자유와 평등의 실현에 더하여 개개인 간의 공동성(우애)의 실현이 필요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네이션= ‘국민’= 현재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성원을 포함.
p.183
<칸트의 구상>
어소시에이션이즘:
상품교환원리가 존재하는 도시적 공간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구속을 거부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있던 호수성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운동.
자유의 호수성(상호성)을 실현하려는 운동으로, 즉 칸트적으로 말하면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
p.185
칸트가 말하는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다루라’는 도덕법칙은 자본주의에서는 실현불가능하다. 화폐와 상품(자본과 임노동)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한, 그곳에 놓인 개인은 부둑이하게 타자를 수단으로만 다루데 되는 것. 물론 국가에 의한 통제나 부의 재분배에 의해 자본주의가 야기한 계급적 격차를 해소하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계급격차를 야기하는 시스템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
당초 칸트의 구상은 상인자본의 지배를 거부한 소생산자의 어오시에이션이었지만, 그는 이후에 출현할 사회주의= 어소시에이셔니즘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배적 정의 즉 재분배에 의해 부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 시스템을 실현하는 것.
칸트는 영구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연합을 제창.= 자본과 국가를 지양하는 과정의 제일보
p187
칸트가 말하는 ‘세계공화국’은 그것을 향해 사람들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규제적 이념.
즉 한없이 멀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경우를 말한다.
p.188
세계자본주의가 야기한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사회주의는 환상이다, ‘거대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1980년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포스트모던적인 지식인들이 이념을 조소하고 있는 사이, 주변부나 저변부에서는 종교적 원리주의가 확대되었다. 적어도 거기에는 자본주의와 국가를 넘어서려는 지향과 실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직자=교회국가의 지배로 귀착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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