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영혼의 산. 가오싱젠.

eyetalker 2007. 11. 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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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산“ (靈山). 高行健. 현대문학북스 刊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저자 Gao XingJian 까오싱젠.


저자는 1982년에 이 소설을 시작해서 1989년 9월에 탈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북경에서 시작해서 파리에서 완성한다.


1987년 유럽으로 출국, 프랑스에 반체제-난민자격으로 망명하고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직후 소설을 탈고했지만 중국에서는 출판금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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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저자가 1983,84년 사이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 자치주 지역의 산간오지를 방랑하며 얻은 각종 모티브,즉, 사진, 대화, 민요가락, 이야기, 등을 주요 제재로 삼아 전개 된다.


저자의 개인적 입장, 문화혁명의 상처, 그 무지몽매의 시기를 겪어야 했던 부모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환과 안타까움. 현재의 생물학적 신분인 중년의 남자로서 여자에 대한, 여자와 의 사랑, 연정에 대한 경험과, 생각, 이야기를 별달리 마련된 체계없이 그저 뜬금없는 에피소드들을 엮어 나간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생각은 일반적인 경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면이 더 독자를 차분하게 만든다. 원시림, 존재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어떤 산, 靈山,을 찾아 나선 방랑길. 깊은 산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도교사원과 사찰. 깊디깊은 자연, 숲속을 떠돌며 들려주는 잔잔한 스토리 전개에 몰입하다, 아니면 그 시각적 이미지가 유독 강한 문맥에 취해있다, 페이지를 넘기면 갑자기 나타나는 욕망과 사랑에 대한 짧은 단상에 정신은 알 수 없는 어떤 호르몬을 발산하는 느낌이다. 아드레날린은 아니고 보다 잔잔한 거... 세로토닌인가?



7. 당신은 장거리 운행버스를 탔다.


11. 북쪽 지방은 벌써 가을이 한창이다. 하지만 여긴 여름더위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산 너머로 저물기 직전이지만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15. 산들 사이에 열려있는 계곡에는 논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여기저기에 푸르른 대나무 숲이 박힌 듯 자리잡고 있다.


산 정상들이 구름과 안개 속에서 뒤엉켜 있는 곳으로


18. 당신도 이제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으니, 낮지도 높지도 않은 자리에 앉아 서두르지 않고 맡은 임무를 이행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를 꾸며 님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며, 매달 이자가 붙어 은퇴할 즈음에는 노후를 즐길만한 어느 정도의 재산으로 불어날 약간의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조용히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19. 불 앞에 앉아 그가 술을 마신다. 하지만 그 전에 술대접에 손가락을 담가 저은 다음 푸른 연기를 뿜으며 쉭쉭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불꽃위에 대고 흔든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26. 진실된 것은 바로 나 자신, 내가 금방 본, 남에게 전할 수 없는 순간적인 느낌이다. 바깥에는 안개가 깔리기 시작해 어둠에 잠긴 산들의 윤곽이 점점 흐려진다. 급히 흐르는 강물소리가 당신 내부에서 울려퍼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33. 떠날 때는 당신 귀를 간질이는 강물의 속삭임을 잊지말라. 돌아서서 봉황새의 보금자리, 경이로운 영산을 바라보라.


82. 여기는 지의 식물도, 화살대나무 숲도, 덤불도 없기 때문에 나무들 사이에 넉넉한 공간이 있어 숲이 한층 더 밝고 사야도 넓다. 저 멀리 날씬하고 기품이 넘치는 순백의 진달래가 그 놀라운 순수함으로 억누를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 꽃은 다가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 내가 저 아래에서 보았던 붉은 진달래보다도 꽃잎도 더 두텁고 꽃술도 더 크다. 시들 줄 모르는 순백의 꽃잎이 나무 발치를 뒤덮고 있다. 그 생명력은 어마어마하다. 그 꽃은 바라는 것도, 목적도 없이, 상징에도 은유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억지스러운 비교나 관념적인 연상을 용납하지 않은 채, 자신을 드러내고픈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한 상태로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101

당신 앞에 자그마한 촌락 하나가 나타난다. 청색 벽돌과 검은 기와로 된, 모두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강을 따라 계단식 밭과 야산 발치에 여기 저기 자리를 잡고 있다.



123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 그것은 당신이 보는 대로일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여인 일 것이고, 당신이 마음속에 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당신은 악령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124

내가 큰 영혼의 바위(大靈岩)에 도달한 건 아직 어둠이 완전히 깔리지는 않았을 때였다. 나는 푸른 이끼로 뒤덮인 가파른 갈색 절벽들 사이로 난 깊고 긴 협곡을 따라 하루 종일 산길을 걸었다. 협곡 끝 불의 혓바닥처럼 붉은 석양의 마지막 미광이 산의 정산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128. 얼굴을 닦자 제정신이 돌아왔다.


129

하지만 여기 여자애들은 - 그가 도톰한 입술을 가진 소녀의 크로키를 가리킨다- 정말 관능적이에요.!


저 입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삿되지 않은 관능말입니다.

삿되지 않은 관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자들은 모두 관능적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항상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죠. 그리고 예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131

내 뒤쪽에 명료하지 못한 의식 한 조각, 되살리기 힘든 머나먼 추억 한 자락처럼 희미하고 미세한 불빛 하나가 나무들 그림자 사이로 깜박거린다. 마치 내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서서 내가 떠나온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길은 없다. 아직 꺼지지 않은 이러한 의식만이 내 두눈 앞에서 희미하게 떠돌고 있을 뿐이다.


245

7-8리 떨어진 곳에 잠시 채굴을 하다가 오래전에 방치된 구리광산이 하나 있다.

(어디일까?)


262 이 습한 동굴 속, 나는 울적하다. 축축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옷이 피부에 착 달라붙는다. 이 순간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창, 환한 창이다. 그 뒤에 약간의 열기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창. 그게 모두다. 그 나마지 것들은 다 헛되다. 하지만 그 창은 아직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280

당신은 정말 차갑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여자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다해도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그녀는 당신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결코 자신을 내동댕이치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녀는 외로움이, 공허가 두렵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의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293

가장 심각한 것은 내 마음이 늙어버렸다는 사실, 내가 이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젊은 처녀만을 격정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여자들과 가지는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연스러움을 상실해버렸다. 오로지 육체적인 욕망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 순간의 쾌락만을 추구할 때조차도 나는 짊어져야할 책임이 있을까봐 두려워한다.



324

내 밑에는 끝없는 내리막길이 펼쳐져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평평한 곳까지 내려온다. 돌아보자 황량한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석양에 비쳐 더욱 외로워 보인다.


2권

42. 혹시 조그만 읍에서, 한 버스 터미널에서, 한 나루터에서, 길에서 도롯가에서 우연히 그 여자를 만남으로써 당신이 당신 내부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머나먼 꿈들을 일깨웠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자취를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43. 강 건너편 자줏빛 양산을 든 한 여자가 잡초와 관목수풀 사이에 파묻혀 절벽 꼭대기까지 이르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다. 부지런히 걷는 그녀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산꼭대기에 마을이 있는 게 틀림없다.


51. 당신은 내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은 내 고독이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도 내 짐을 덜어줄 수 없다. 나는 나자신에게 내 토론의 상대가 되어달라고 요청할 수 밖에 없다.

 


52. 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삶은 싫건 좋건 하나의 여행이다. 나는 여행 중에 내 상상세계 속에 침잠해 나의 그림자인 당신과 함께 나의 내면을 여행한다.


70. 결국 이 거대한 세계 속에서, 당신은 약하고 작디작은 바닷속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것을, 욕심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81. 당신은 그녀에게 말을 끊지 말고 가만히 듣고만 있으라고 한다. 당신은 그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자를 생각한다고, 이전 남자와의 관계를 끝내지도 않은 채 새로운 남자와 관계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89. 목표를 가지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목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찾아 헤매는 행위 역시 하나의 목표다. 원래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 뿐이다.


101. 이미지를 잃는 것은 공간을 잃는 것이고, 소리를 잃는 것은 언어를 잃는 것이다. 입술을 움직여서 소리가 나지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도 의식의 한가운데에는 아직 욕망이 남아있다. 그 약간의 욕망조차 사라지면 그땐 열반에 들게 된다.

  

192 원래 인간은 세처럼 자유로워요, 약간의 즐거움을 찾아다니며 즐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204.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어두운 구름이 잠시 벌어진 틈으로 영롱한 별빛이 반짝이더니 금세 또다시 어두워진다. 배 뒤편에서 물을 휘젓는 노의 철썩임과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의 찰랑거림이 울려 퍼진다. 말고 차가운 바람이 벌어져 있는 천 사이로 몰아져 들어온다.


224 ‘세상은 몸을 빌려주어 인간에게 빚어보라고 한다. 본래의 진면목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229. 


이것은 소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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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는 소매를 훌훌 털고 가버린다.



262. 홀로 멀고 먼 길을 헤맨 끝에 그는 긴 두루마리를 걸치고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 앞에 이른다. 그가 노인에게 길을 묻는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영혼의 산이 어디쯤 있는지요?”


272. 강 건너편, 새하얀 눈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밭가에 나무가 세 그루 있어, 나무들을 지나치면 산 맞은 편, 무거운 눈에 깔려 무너져 내린 집들 발치에 이르게 돼.



277. 잠이 오질 않아요. 정신이 너무 맑아요, 투명한 밤, 푸른 숲, 쌓인 눈이 보여요. 별도, 달도 없어요, 이 모든 게 분명히 보여요, 정말 이상한 밤이에요, 이 설야 속에 당신과 영원히 있고 싶어요. 날 떠나지 말아요, 날 버리지 말아요, 왜 인지는 모르지만 울고만 싶어요. 날 버리지 말아요. 나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말아요, 다른 여자들한테 입 맞추지 말아요!

 

296. 창을 통해 나는 눈 쌓인 땅 위에 앉아 있는 아주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를 본다. 개구리는 한쪽 눈은 깜박이고 다른 쪽 눈은 둥글게 뜨고 있다. 개구리가 미동도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신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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