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Muriel Barbery)/김관오 옮김/ 아르테 출판 2007년
노르망디의 철학교사인 저자.
비행기로 한 열서너 시간을 날아야 와 닿을 조선반도의 한 구석에서 그녀의 책을 읽다, 그녀의 앳되뵈는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천천히 이 작은 지적 기쁨을 누렸다. 왜?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가. 그것도 예쁜여자를 말이다. (엉뚱한 소리지만,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오십대의 늙고 추한(꾸미지 않고 살기에) ‘르네’와 부잣집 막내딸, 어린 ’팔로마‘ 그리고 일본적 신사미를 소설적으로 정형화한 편한 인물(돈많고 교양있고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독신남) ’카쿠로‘ (거꾸로인가? 逆?) 가 주요 축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늙은 미녀가 등장하는 프랑스판 ‘프리티 우먼’이 될 것이 뻔하다.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 우울한 섹스신이 뒤범벅된. 하지만 소설은 그리 뻔하지 않다. 일본적 절제미에 대한 저자의 숭배에 가까운 신념이 그리 거슬리지도 않는다. 소설은 유럽적 데카당스와 사회주의자들의 위선, 부자와 빈자의 관계를 꾸준히 조명한다. 아니 그것이 주제일까?
중간 중간, 쉽지 않은 철학적 단상들이 예리한 칼처럼 삐죽 고개를 내밀면서 갈 길을 방해하고 있지만 어차피 이해 안 되는 곳은 그냥 건성으로 활자만 읽고 넘어가버리면 된다. 내가 훗설의 현상학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저자가 철학교사임을 기억하라. 프랑스는 역시 철학의 나라이다... 그러니까 논리적 추론과 변설에 능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행세하기 힘든 곳이다. 우리의 논술도 그에 준하는 일종의 사태이다.)
톨스토이를 읽고 즐기는 여자 ‘르네’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소설의 재미를 이런 식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잠시.
(르네..? 젤위거?)
p40
친구도 없이 늙고 쇠약한 나
p58
사람들은 의식의 자각은 우리의 출생과 일치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데, 그것은 우리의 출생말고는 다른 살아있는 상상할 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예쁜 눈을 가졌네.” (사유리?) (다이나스티의 ‘달님’을 닮은 눈인가?)
p60
바보 아이는 배고픈 영혼이 되었다.
p70
나는 그토록 많은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독학자들처럼 난 내가 책에서 이해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없다. 그저 언젠가는 마치, 보이지 않는 가지들이 갑자기 뻗어나 내가 산발적으로 읽은 모든 것들이 서로 역여 지식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가 , 그러다가 문득, 의미를 잃어버리고, 본질을 놓치고, 또 같은 줄을 다시 읽은 들 아무 소용도 없고, 그리고 읽을 때 마다 조금씩 더 나를 피해 달아나는 것 같았다. 그� 나는 메뉴를 몰두해서 읽은 다음 배가 부르다고 믿는 한 늙은 미친 여자 같아보였다. 아마도 이런 소질, 이런 맹목은 독학의 등록상표인 듯하다. ....독학은 독학자에게 ‘생각의 자유’와 ‘종합’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p77
인간의 현실만큼 더 혹독하고 부당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은, 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먹고 자고 생식하고 정복하고 우리 영토를 안전하게 지키도록 계획된 영장류이다. 그런데 이일에 가장 특출한 사람들, 우리들 중에 가장 동물적인 사람들이 항상 다른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에게 잡혀 먹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말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원을 지키거나 저녁식사를 위해 토끼를 잡아오지도, 혹은 제대로 생식하지도 못한다. 우리들은 가장 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건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 아주 끔찍한 모욕이고, 타락이며, 깊은 모순이다.
p102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돈과 수완이라는 산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을 아무 미약하게, 또 정말 무심하게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p136
내 식사준비- 토마토와 바질과....
나 같은 수위 아줌마, 비좁은 수위실 속에서 비록 가시적 권력은 포기했지만, 그렇다 해서 정신적인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나까지 포함해서..
p150
‘전쟁 시나 평화 시나 사람들은 많이도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 ..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모든 것은 제때에 온다.’
(전쟁과 평화, 쿠투조프 사령관, 앙드레 왕자에게)
p206
미셸부인... 어떻게 말해야 될까? 그녀는 지성으로 번득인다. 그녀는 수위처럼 연기하려고, 그리고 멍청하게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훤히 보인다.... 그녀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p221
이런 문맥에서, 움직이고 있는 치타는 우리의 규범이다. 그의 모든 자세는 조화롭게 융합되어, 우리는 그의 한 자세와 그다음 자세를 구별할 수 없다.
p273
장미관을 얹은 처녀처럼
한껏 모양을 낸.
p347
아연제조CAP(실업계) 과정이 아닌, 철학 석사를 준비하고 있는 콜롱브..
p349
난 해야 할 오직 한 가지 일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났던 그 과업을 찾는 것, 그리고 괜히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 속에 신성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일을 완성하는 것. 이렇게 하는 것만이 죽음이 우리를 데려갈 그 순간에, 우리는 건설적인 뭔가를 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p353
가난한 자들의 욕망에 대한 부자들의 경멸만큼 경멸적인 것은 없다.
p361
영장류 최대의 관심사를 잘 성찰해보면, 먼저 성 그리고 영토와 계급인데, 성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비교적 쓸데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393
아줌마는 삶이 의미가 있다고 믿으세요?
p399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조용했고, 비어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걸 내 속에 맞이할 수 있었다.
작은 소리, 즉 아주 아주 아주 조용히 ‘쉬’하는 소리, 공기의 떨림이 있었다. 조리대 위로 떨어지고 있던, 꺽인 작은 줄기가 붙어 있는 장미 봉우리 였다. 봉우리가 조리대를 건드린 그 순간, ‘풉’소리가 났다. 그건 생쥐의 귀에나, 혹은 아주 아주 아주 조용할 때 인간의 귀에나 들릴만한 초음파의 일종인 ‘풉’이었다. 나는 완전히 사로잡혀서 숟가락을 든 로 가만히 있었다. 정말 멋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멋있었을까?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건 단지 조리대 위로 막 떨어진, 꺽인 작은 줄기가 붙은 장미 봉우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p442
난 정말이지 이 모든 부자들과 이 모든 가난뱅이들과 이 모든 광대 짓거리에 지쳤다.
지쳤다, 그래, 지쳤다고....
뭔가 끝이 나야만 했고, 뭔가 시작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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