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사이
후쿠오까 신이치. 은행나무/2008
P5.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 20세기의 생명과학이 도달한 답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1953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겨우 천 단어 (한 쪽 정도)의 짧은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 논문에는 DNA가 서로 역방향으로 꼬인 두 개의 리본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모델이 실려있었다. 생명의 신비는 이중나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DNA이중나선은 서로 상대방을 복제한 상보적 염기서열 구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중나선이 풀리면 두 개의 가닥, 즉 플러스 가닥과 마이너스 가닥으로 나뉜다. 플러스 가닥을 모체 삼아 새로운 마이너스 가닥이 생기고, 원래의 마이너스 가닥에서 새로운 플러스 가닥이 생기면 두 쌍의 새로운 DNA이중나선이 탄생한다.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의 형태로 나선 모양의 필름에 새겨진 암호, 그것이 바로 유전자 정보다. 이것이 생명의 자기복제 시스템이며 새 생명이 탄생할 때 혹은 세포가 분열할 때 정보가 전달되는 시스템의 근간을 이룬다.
P35.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무엇이다. 만약 생명을 ‘자기를 복제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바이러스는 틀림없이 생명체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달라붙어 그 시스템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모습은 기생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 입자 단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기계적 오브제에 지나지 않아 , 생명으로서의 움직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P34
.. 바이러스를 단순한 물질과는 분명히 구분 짖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큰 특성이 있으니 바로 스스로를 증식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자기복제능력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의 이 능력은 단백질껍질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단일분자가 도맡아 있는데 핵산=DNA 혹은 RNA가 그것이다. .. 바이러스는 세포에 기생해야만 복제가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우선 혹성에 불시착하듯 그 기계적인 입자를 숙주로 삼을 세포의 표면에 부착시킨다. 그 접착지점을 통해 세포의 내부를 향해 자신의 DNA를 주입한다. 그 DNA에는 바이러스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숙주세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외래 DNA를 자신의 일부라고 착각하고 복제를 하는 한편 DNA정보를 기반으로 열심히 바이러스의 구성재료를 만든다. 세포 내에서 그것들이 재구성되면서 잇달아 바이러스가 생산된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는 곧장 세포막을 뚫고 일제히 밖으로 뛰쳐나온다.
P44
DNA는 긴 끈 모양의 물질이다. 그 끈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주를 꿰어놓은 목걸이 모양의 구조를 하고 있다. DNA안에 생명의 설계도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면 각각의 진주 알은 알파벳, 끈은 문자열에 해당한다. …DNA를 강한 산에 넣고 열을 가하면 목걸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진주가 뿔뿔이 흩어진다. 그 상태에서 진주의 종류를 조사해 보았다. 놀랍게도 진주의 종류는 겨우 제가지 였다. A와 C와 G와 T라는 네 알파벳
P45
세포에서 DNA를 추출하는 일은 간단하다. 세포를 싸고 있는 막을 알칼리 용액으로 녹인 후 위에 든 맑은 액체를 중화시켜 염과 알코올을 첨가하면 시험관 안에 하얀 실 모양의 물질이 나타난다. 이것이 DNA다. 유리막대로 이 실을 돌돌 말아 올리면 DNA를 추출하는 게 된다.
P55
DNA는 어떻게 형질을 운반하는 것일까? 여기 DNA와 단백질의 관계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다. DNA가 운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보이며, 실제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단백질이다. 항생물질을 분해하는 것은 효소라 불리는 단백질이며, 병원성을 유발하는 독소나 감염에 필요한 분자도 모두 단백질이다.
P64
.. 지금 중요한 것은 나선구조 그 자체보다 DNA가 쌍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답은 다름아닌 ‘정보의 안정화’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DNA가 상보적으로 대칭구조를 취하고 있으면, 한쪽 문자열이 정해지면서 다른 쪽도 의무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혹은 두 가닥의 DNA사슬 가운데 어느 한쪽을 잃어버려도 다른 한쪽을 모체 삼아 쉽게 복구가 가능하다..
P120
‘생명이란 무억인가”의 사문에서 슈레딩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을까.
이 ‘특이한’,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질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생명현상과는 도데체 어떤관계가 있는 것일까?
분명 개개의 원자는 아주 작다. 원자의 지름은 대체로 1에서 2 옹스트롬이다. 옹스트롬이란 1미터의 100억분의 1이다.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세포조차 그 지름은 거의 30만-40만 옹스트롬이며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원자가 포함되어있다.
P146
나는 여기서 쇤하이머가 발견한 생명의 동적인 상태라는 개념을 한층 더 확장하여 동적평형이라는 단어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 말에 대응하는 영어는 Dynamic equilibrium이다. 해변에 서 있는 모래성은 그곳에 실체로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효과로서 그곳에 있는 동적인 무언가이다. 그 무언가란 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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