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成皇后, 제국을 일으키다. 한 영우, 효형출판
우연히, 아는 사람의 호의로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게 되었다.
그 이의 면모를 새롭게 조명해볼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또는 읽었던 황후에 대한 인상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새벽이면 궁궐을 빠져 나와 동묘 관우 사당에 들러 점을 쳤다든가 아니면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든가 하는 에피소드. 심지어 무당과 깊은 정분을 나누었다는 식의 온갖 비난과 폄훼는 교정되지 않은 채였는데.
이 책을 통하여 황후의 마지막 시기의 전후를 살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국장도감의궤의 주요 부분이 발췌되어 있어 무척 흥미롭다.
P.6
고종과 황후를 비하하는 우리의 관념 속에는 황실과 대립관계에 있었던 친일개화파에 대한 숭앙이 담겨있다… 을미사변 100주년이 되던 그해( 1995년)….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던 … 국장발인반차도…. 명성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의 성립은 깊은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책들을 연관지어 읽으면서 …. 1895년에 죽은 황후의 장례식이 2년 2개월 후인 1897년 111월22일에 치러졌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이 보다 한달 전에 선포된 대한제국의 성립이 직접적으로 황후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자각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
p.28
황후는 4남1녀를 낳았지만 모두 단명했고, 둘째 아들 척만이 살아남았다. 세자를 위한 황후의 정성은 비할 수 없이 컸기에 부처님과 무당에 기원하느라 많은 재물을 탕진하여 세인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매천야록, 황현)
p.82
한편, 이미 23세가 된 태자도 철이 들 만큼 들었다. 태자는 “나라의 원수를 갚지 않으면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또 나라의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은 “춘추”의 대의에도 어긋난다.”고도 말했다. –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p. 144
이상 칭제 요청 상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조선이 단군.기자 이래로 높은 문화전통을 이어왔다는 점, 명나라로 이어져온 중국 황제문화의 정통이 淸이 등장한 이후로는 조선에 있다는 점, 즉 조선이 中華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이 밖에도 그 내용의 핵심은 영토의 크기가 황제를 칭할 만큼 크고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를 통합했다는 것, 현재 만국공법상으로도….. 요컨데 조선 후기 이래 성숙되어온 崇明反淸의 주체적 역사의식과 당시의 국제정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칭제논리의 사상적 기반..
p. 154
(1897년) 10월13일 아침, 황제는 황후의 빈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오전 8시 태극전에 나아가 ‘大韓’이라는 국호를 반포하면서 13개조의 대사령을 조칙으로 발표했다.
2011년 11월 12일
ㅈ ㅣ ㄴ
'雜讀' 카테고리의 다른 글
D-day, 김병인 장편소설 (0) | 2011.11.27 |
---|---|
Your screenplay sucks ! by William M. Akers (0) | 2011.11.24 |
스티브 잡스 Steve Jobs 전기 (0) | 2011.11.07 |
匈奴人 金氏의 나라, 伽倻. 서 동인, 주류성 2011. (0) | 2011.10.29 |
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 덕일 (0) | 2011.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