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匈奴人 金氏의 나라, 伽倻. 서 동인, 주류성 2011.

eyetalker 2011. 10. 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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匈奴人 金氏의 나라, 伽倻

서 동인, 주류성 출판사. 2011.

실크로드의 지배자, 가야를 세우다.

 

2010 8월에, 진명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송동건,  고구려와 匈奴라는 책이 있었다. 내용이 필부의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이라, 무지를 탓해야 함과 동시에-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 하지 아니한 것인지도- 저자를 어떻게 봐야 할 지, 허둥지둥하다가 책장에 수납해 두고 말았다.

 

1년이 더 지나, 지난 주, 우연히 서점을 들러 책장을 둘러보다, 평소의 관심사인 가야와 관련된 신간, “흉노인 김씨의 나라, 가야라는 기괴한 제목을 대하게 되었다.

 

흉노융적’, 이니 산융이니 하여 알겠는데, 왜 이 분들이 갑자기 가야를 세웠다고 하나? 코미디 처럼, 큰 인물 나셨다 그죠? 하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열었다만, 내용이 간단치 않네. 이 아제, 뉘신지 몰라도 대단하다 그죠? 가 되었다.

 

저자의 주장, ‘흉노’= , Hun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하면 되는데.

 

자전을 보면, () 이라는 한자의 발음은 시웅~”이다. 그런데, 우리 말로 흉노를 읽으면 훈느와 유사한데. 우리말의 기원이 알타이 지역 어족, 즉 한족이 말하는 흉노와 그다지 다르지 않으므로, 알파벳 문자의 Hun과 한자 흉노의 한글발음과 유사한 훈느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는 있겠다.

 

간단히 훓어보면;

 

김해김씨, 수로왕과 허 황옥은 흉노족 선주민과 후주민 귀족간의 결합이며 그 결과는 가야로 나타났다(저자는 그 결합이 서기 150년 경의 사건으로 주장한다).

 

 이라는 족성은 (iron)이 아니라 (Gold)이며, 최초의 연원은, 기원전 121 가을, 武帝가 대립관계이던 북중국 흉노를 공격, 분쇄하고 그 태자를 포로로 잡아온 바, 그들이 일찍부터 金人을 섬겨온 것을 보고- 여기서 金人이란 금칠을 한 佛像, 즉 부처- 이라는 族姓을 하사한 것이며 이들은 후에 반도의 남부에 정착하여 가야의 김씨의 시원이 된다는 것이다. 김씨 일족의  반도로의 진출은 일회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긴 역사를 거치는 동안, 요동을 경유하여 수차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중국 西安의 궁정에서 만들어진 청동솥이 김해 양동리에서 발굴되는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추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도의 허리가 통행 불가능하게 된 지 불과 60년이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포함한 반도의 남쪽 사람들이 간도, 만주너머의 땅을 마치 신화 속의 그것으로 느끼게 된 것은 아닌가. 민족의 역사성, 그 스케일이 팍 줄어들었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대륙 이곳 저곳, ,  지린, 선양, 따리엔, 진저우, 베이징, 광저우, 홍콩, 렌윈강,쿤밍 같은 곳을 다니긴 했다만, 지금 생각하면 역사성이라곤  하나 없는 촌 놈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책을 멈출 수 없다.  다시 대륙을 가면, 고토에 들러 향불 정도는 피우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다오.  

 

황석영 같은 이는, 휴전선은 종이에 그은 금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호방하게 반도의 남북을 드나들고, 양 체제를 현재의 실체로, 동시에 긴 역사 속의 한 시기에 그칠 꼬라지들로 간단히 치부하는 강단을 보여주었건만 말이다. 하긴 지나온 긴 역사를 생각하면, 작금의 남북시대가 사실 뭐 별것인가.  38선을 베게 삼아 죽겠노라고 말한 분은 바로 그런 역사성을 이야기 한 것이다.

 

알타이 연합론이 반도인들에게 크게 어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대륙에 연이어진 반도’ , 그리고 저 남쪽 바다너머의 열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역사가 언젠가 다시 무성해 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민족과 역사에 대한 당신 상상력의 깊이, 한계가 어디쯤에 있는 지 자문하게 만든다.

 

2011 1029/ 소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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