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평설 丙子胡亂
韓明基 2014년 54회 한국츨판문화상 수상작
1636년12월에 시작된 後金(淸)의 침입 -丙子胡亂-은 불과 2개월만에 仁祖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지만 이것이 1599년에 끝난 壬亂이후 불과 37년만에 당한 兵亂임을 감안하면 물적,인적 피해뿐 아니라 심적 피해또한 엄청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상 반도가 대륙 및 일본의 지배하에 놓인 시기는 다음과 같다.
-다음-
993년-1019년 약 30년간 遙나라의 침입
1125년 金: 고려복속
1231년-1281년 몽골 : 고려, 원 연합군 일본정벌 실패까지 약 50년간
1359년-1361년 홍건적의 침입
1592년-1598년 임진왜란/정유재란
1627년-1636년 정묘호란/병자호란- 1897년 대한제국 성립까지 淸의 속국
1910년-1945년 일제강점기
[丙子胡亂]
丙子년에 일어나 丁丑년에 끝났기 때문에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 부르기도 한다.
1627년 후금(後金: 뒤의 淸)의 조선에 대한 1차 침입 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후금에 당함으로써 후금에 대해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
청태종이 1636년 12월 1일에 청군 7만, 몽고군 3만, 한군(漢軍) 2만 등 도합 12만의 대군을 심양에 모아 예친왕(禮親王) 대선(代善), 예친왕(睿親王) 다이곤(多爾袞), 예친왕(豫親王) 다탁(多鐸)과 패륵(貝勒) 악탁(岳託)·호격(豪格)·두도(杜度) 등을 이끌고 다음 날 몸소 조선 침입. 압록강 도하후 7~8일만에 남한산성 포위.
1월 30일 인조는 세자와 함께 호곡(號哭) 소리가 산성 안을 가득히 채운 채 서문으로 출성해 한강 동편 삼전도(三田渡)에서 성하(城下)의 맹(盟)의 예를 행한 뒤 한강을 건너 서울로 돌아왔다.
p007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 조선은 분열되어 있었다. ‘중화국 明척을 섬기고 오랑캐 淸화에 맞서는 것을 국시로 내세웠던 斥和파와 主和파간의 논쟁이 격렬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조선은 청의 침략을 감당할 역량이 없었다는 사실이다....거기에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明또한 조선을 도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청군의 침략에 수시로 유린되면서 자국을 지키기에도 급급했기 때문이다....정묘호란을 겪은 1627년부터 병자호란을 다시 겪는 1636년까지는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말았다. 왕권보위에만 골몰하며 안팎의 大局을 볼 줄 몰랐던 仁祖, 과거정권의 실정(光海君)을 한껏 성토했지만 집권이후 권력과 부에 취해 버렸던 반정공신들, 명분과 의리를 소리 높여 외쳤지만 그것을 지킬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던 언관들....준비 없이 맞이한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인조는 ’오랑캐 추장’에게 무릅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後金-淸의 騎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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