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고대로부터의 통신

eyetalker 2005. 11. 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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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금석문으로 한국고대사 읽기.

2월1일 상훈과 북한산에 올랐다.

비봉에 혼자 올라 진흥왕 순수비유지 앞에서 사진을 찍다.

따뜻한 날씨에 눈이 녹은 곳과 음지라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신춘과 엄동이 혼재하고 있었다.

울주 천전리 각석, 반구대암각화 같은 곳도 한번 꼭 가보고
싶다. 울산,경주,양산등지에는 그 동안 출장등으로 자주
갔었는 데, 그 간에 주말이라도 과감히 이용해서 다녀올 것을,
생각의 부족으로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까울 뿐..

ㅈㅣㄴ


1. 신라 왕족의 로맨스, 그 현장을 찾아서(강종훈)
*‘천전리각석’ 원명<525년>
*‘천전리각석’ 추명<539년>
왕실의 근친혼이 성행하던 525년 어느 날, ‘벗으로 사귀는 오라비와 누이’의 관계였던 사부지 갈문왕과 미지의 여성 어사추여랑이 경주에서 가까운 천전리계곡으로 ‘데이트’를 나와, 바위에 자신들의 사랑을 남겼다.

2. 고구려 건국설화가 모두루무덤에 묻힌 까닭은(여호규)
*모두루무덤 묘지<5세기 중반>
고구려의 옛 도읍이었던 집안분지에 남아 있는, 주인 있는 무덤 하나. 이 무덤에는 ‘염모묘’와 ‘모두루묘’라는 두 개의 팻말이 서 있다. 하나의 무덤에 두 개의 팻말. 무덤 주인공 염모와 모두루를 두고 한,중,일 삼국 학자들이 벌인 오랜 논쟁.

3. 고대 한일 관계사의 민감한 화두, 칠지도(김태식)
*칠지도<426~526년경>
고대 한일 관계사에서 백제와 왜국 사이에 맺고 있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칠지도’.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의 증거 자료로 쓰고 있는 칠지도는 그 발견 스토리부터 신비롭고, 은밀한 범죄의 기운마저 풍긴다.

4. 무늬와 그림에 담긴 청동기인들의 메시지(송호정)
*청동기시대 문양과 암각화<청동기>
문자가 기록되기 전인 청동기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모습을 추론하는 방법은, 당시 사람들이 남긴 무늬와 그림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뿐이다. 토기와 청동기, 암석에 새겨진 청동기인들의 삶과 일상생활.

5. 역사의 블랙홀, 동수묘지(전호태)
*안악3호분 묵서명<357년>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중국과 북한으로 넘어온 뒤 발견된 황해도 안악군의 ‘안악3호분’. 그런데 이 무덤에 있는 68자의 묵서명이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지루한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안악3호분의 주인공은 묵서명에 기록된 망명객 동수일까.

6. 고구려는 정말 유주를 지배했는가-유주자사 진묘지(전호태)
*덕흥리 벽화고분 묵서명<408년>
1976년 관개수로 공사 중 발견한 남포시 소재 ‘덕흥리 벽화분’은 풍부한 벽화 내용과 설명문, 묘지(墓誌)까지 남아 있는 고구려사 연구의 ‘정보 창고’이다. 벽화분의 주인공 유주자사 진은 광개토왕대의 인물이지만,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이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7. 지석에 새겨진 무령왕 부부의 삶과 죽음(이한상)
*‘무령왕 지석’<525년>
*‘무령왕비 지석’<526년>
‘세기의 발견’으로 기록된 1971년의 무령왕릉 발굴. 왕릉 출토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과 그 왕비임을 알려주는 4면의 지석이다. 이 지석을 구성하는 간지도와 매지권에 얽힌, 아직도 풀지 못한 비밀들.

8. 신라사의 새로운 열쇠, 냉수리비와 봉평비(전덕재)
*냉수리비<503년>
*봉평비<521년>
논둑에 버려진 성가신 바윗덩어리에서 국보로 탈바꿈한 ‘울진 봉평 신라비’와 ‘영일 냉수리 신라비’.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발견 스토리만큼이나 이 비석들에는 고대사 연구의 신기원을 여는 극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9. 조우관을 쓴 사절 그림 이야기(권덕영)
*〈양직공도〉 중 ‘백제 사신도’<6세기>
*이현 묘의 〈예빈도〉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중 고구려 사신 부분
고대 한국인을 상징하는, 새 깃털 모자 ‘조우관’. 중국 남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화첩에는 백제 무령왕이 파견한 백제 사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당나라 장회태자 이현 묘의 벽화 속에도 고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보인다. 이들이 왜 중국 화첩과 벽화 속에 등장하는 것일까?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10. 중원고구려비, 선돌에서 한반도 유일의 고구려비로(최장열)
*중원고구려비<495년>
충북 중원의 한 마을 석축 화단에 서 있던 이름 없는 비석이 1,500년 전의 고구려시대 비일줄이야. 비문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비를 세운 연대 또한 불분명한 ‘중원고구려비’에 얽힌 갖가지 의문들.

11. 순수비에 담긴 진흥왕의 꿈과 야망(강봉룡)
*‘창녕비’<561년>
*‘황초령비’<568년>
*‘북한산비’<568년 이후>
변경 지역을 직접 돌아보고, 그 내용을 비석에 새긴 신라 진흥왕. 마운령, 황초령, 북한산, 창녕 등 전국 각지에 서 있는 순수비는 진흥왕의 활동사를 생생히 전해주고, 당시 역사를 해명하는 확실한 척도이다.

12. 백제 노귀족의 불심, 사택지적비(문동석)
*사택지적비<654년>
백제 의자왕 때 정계에서 은퇴한 사택지적이란 노귀족이 세운 ‘사택지적비’. 그 내용은 늙어가는 것을 탄식하고 불교에 귀의한다는 것이지만, 비문 속에는 백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13. 기와 조각에서 찾아낸 백제 문화, 인각와(이병호)
*인각와<7세기 전반>
최근 목간과 토기, 기와 등이 역사 해석의 지평을 넓히는 자료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특히 명문 기와는 유적의 성격이나 명칭, 편년 등을 밝히는 중요한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제 사비 시기의 명문 기와인 인각와를 통해 백제인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14. 목간에 기록된 신라 창고(김창석)
*경주 황남동 376유적 출토 목간<8세기 전후>
경주 황남동 376유적에서 출토된 목간들. 나무 조각에 문자를 기록한 목간은 고대인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전해주는 일급 사료이다. 특히 376유적 출토 목간은 통일신라기의 창고체계와 재정 운영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할 만하다.

15. 백제 유민의 숨결,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조경철)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673년>
1960년 한 대학생이 자기 고향인 충청도 연기에 있는 비암사에 명문이 새겨진 돌이 있다는 보고서를 숙제로 제출했다. 이것이 바로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이다. 이 불비상에는 나라가 망하고 20여 전이 지난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백제 유민의 숨결이 담겨 있다.

16. 정혜?정효공주 묘지, 발해사를 이야기하다(김종복)
*‘정혜공주 묘비’<780년>
*‘정효공주 묘비’<792년>
발해는 중국의 주장대로 당나라의 지방 봉권정권이었을까. 아니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일까. 발해인이 직접 남긴 기록이 전무한 상황에서, 발해인이 새긴 정혜?정효공주의 묘지명은 발해 문왕대의 체제와 정치적 갈등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17. 압수한 벽돌판과 사라져버린 토지문서(하일식)
*‘해인사 묘길상탑기’<895년>
1966년 문화재 밀반출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일단의 도굴범들이 검거됐다. 이들이 훔쳐 처분하지 못한 유물들 속에 들어 있던 벽돌판이 바로 최치원이 찬한 ‘해인사 묘길상탑기’다. 이 벽돌판 기록은 신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8. 100년 동안의 논쟁, 광개토왕릉비(임기환)
*광개토왕릉비<414년>
지금은 중국 땅이 된 고구려의 고도 국내성 지역에 우뚝 서 있는 ‘광개토왕릉비’. 그러나 비석 주변에 있는 태왕릉과 장군총 중 어느 것이 광개토왕릉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구려 멸망과 함께 잊혀진 광개토왕릉비에 얽힌 논란과, 일제가 자행했다는 비문 변조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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