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괴테.

eyetalker 2005. 11. 2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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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772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펴낸 괴테가 장년에 들어 자신의 삶을 모델로 쓴 교양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앞의 책은 성장소설이라고 할법하다. 베르테르는 샤롯데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자살하지만, 동일한 인물이랄 수도 있는 빌헬름 마이스터는 우여곡절 뒤에 최후의 연인 테레제와 인연을 맺는다는 결말을 보인다. 나이가 든 만큼 자살같은 파괴적 결말이 아닌 현실에 정착하는 소시민,사회인으로서의 결론이다.

독일적인 소설의 전형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토마스만의 “마의 산”이나 ‘토니오 크뢰거“같은 소설을 읽다보면 그 따문함에 하품을 거듭하게되는 바, 이 소설들은 잠못드는 불면의 밤을 치유하는 치료제로도 손색이 없다.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2권을 읽는 데 무려 한달여가 걸린 것 같다. 서너장을 일관되게 읽을 수 없었던 것은 일상의 피로감도 일조한 듯 하지만, 실낙원 같은 도색소설은 밤을 세워서라도 독파하고 마는 필자의 습성을 감안하면, 그 내용이 매우 건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독일의 밤도 무척이나 시시하고 싱겁기는 마찬가지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뒤셀돌프, 슈튜트가르트 같은 도시들을 다녀보았지만, 미칠 것 같은 적요의 밤이 독일의 밤이다. 감자, 튀튀한 면, 부석부석한 빵, 돼지고기 덩어리, 맥주가 독일요리의 전부이고, 동네마다 마을 가운데 들어선 우중충한 카톨릭교회만이 시선을 둘 곳이다. 물론 라인강 지류라도 동네근처를 휘감고 돈다면, 그 언덕배기엔 반드시 중국집이 있어서 약간은 다행감을 맛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고..

독일 소설중에서 가장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영어로는 And never said a word.)정도 일까? 전후 피폐해진 독일사회, 귀환병의 고뇌, 그 끝없는 절망감속에서의 부부애가 가슴을 저미는 소설이다.

돌아가서,
소설이 너무나 장구하고 미로같이 복잡하기 때문에 역자의 작품해설을 빌리는 수 밖에 없다. “독서중 수면“이 거의 한달여 지속된 때문에 내용의 일관성에 자신이 없기때문이다.

독일 시민계급의 자녀로 출생한 주인공 빌헬름은 부친의 생업인 무역,장사보다는 연극에 푹빠져든다. 여배우 마리아네를 보고 연모에 빠진 빌헬름은 마리아네와 도망을 치지만, 어 오해로 말미암아 그녀를 버리는 바, 마리아네는 이미 빌헬름의 아이를 이태하고 있다. 나중에 그녀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고,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빌헬름에게 출생의 비밀은 모른 채 맡겨진다. (훨씬 나중에야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된다. 복잡하군..) 연이은 여행중에 필리네, 미뇽, 테레제, 나탈리에등등의 여성들을 만나 그 복잡한 독일적 세계관에 입각한 사랑 또는 연정을 나눈다. 그 끝에 테레제라는 마음의 연인과 결혼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프랑스 대혁명시 프러시아군에 종군하기도 했던 괴테가 젊은 시절의 혁명,열정의 시대를 접고, 장년에 들어서 초월적 관찰자로서, 인간과 세계, 인생의 조화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저술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 중책으로 “어느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이라는 단락.

그 수기의 저자는 시민계급출신의 여성으로서 당대로서는 대단히 빼어나다고 할 수있을 사회, 인생, 종교면 에서의 자아인식과정을 보여주고있다.

당시, 교양 있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남성들로부터) 경멸당하고 (남성들은 대개 무식했기에) 따라서 여성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결혼대상외“의 존재로되는 상황에서 이 여성은 어린시절부터 장년이 되는 사이에 어떠한 인식을 통해서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해 왔는지를 수기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 저는 저의 지식욕과 사물을 조합할 수 있는 능력에 힘입어 곧잘 진리를 알애내고곤 했습니다.

..이런바 덕성이란 것이 감정의 요구에 대해 얼마나 약한 방패인가를 보여주시곤 했습니다.

.. 그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공허한 몇 년 이었습니다.

..저를 나르치스에게 묶어놓고 있는 그 인연의 끈조차도 냉엄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저는 그 끈도 약한 것에 불과하며 그것 역시 끊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 말하자면 새로이, 그리고 전보다 더 의젓하게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제 확신을 뒤흔들어 놓으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 특히 저는 생각이 산만해질 때가 자주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서 저는 고독이 최선의 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제가 항상 진보하고 있고 결코 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 제 행동이 제가 완전무결성에 관해 평소에 지녀오던 그 표상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미쳐 행하지 못할 정도로 육체가 쇠약한데도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날로 손쉽게 느껴진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신성이 아닌 인간본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잇을까요?

수기의 저자는 결국 미혼인 채로, 부모의 죽음을 거두고 노쇠해간다. 신성, 종교에 관한 내용들이 그 저변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종교적 관점에 관심이 가기보다는 수기의 저자인 한 여성의 내면을 꼼꼼히 읽어가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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