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고래, 천명관

eyetalker 2007. 3. 1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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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천명관. 2004년12월. 문학동네


소설이다.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문학동네에 고등학교때의 동기생 하나가 편집부에서 근무했었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냥 해보는 이야기다. 소설과는 무관하다. 단지 이처럼 규칙성이 부재하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 그것은 꼭 제목이 고래가 아니라 멸치라고 한들 독료후의 감정에는 하등 관련이 없는 구름같은 이야기다. 풍문에 듣는 소설. 태어나 18년동안 단 한사람의 통치밑에 천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정설로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느 해 가을의 총성이 몰고온 부고는 어느정도 놀라운 전언이었다. 이 세상의 통치자는 반드시 한명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놀라운 발견이었지만 그 다음 다음날의 세상은 거리에 군복의 숫자가 조금 더 늘어난 것 말고는 달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 의아스러웠다.


소설은 보르헤스적 우스꽝스러움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진지성을 경멸하되 그때마다 버터가루를 조금씩 뿌려 독자의 심적고통을 조금씩 마비시킨다. 하지만 이런, 기성에 대한 ‘때기질‘은 이미 신선미가 아닌 교묘한 작위이다. 우리는 이미 여기저기 체인점을 개설한 ’신선 설렁탕‘의 탕맛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주차장의 발레파킹 담당자에게 알 수 없는 욕지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비다. 그는 그 사실을 알기에 모 지방대 교수직에 목을 걸고 있는 무슨 평론가와의 대담에 그토록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의 유난스런 찬사에 어리둥절해 하는 듯, 건조한 답변을 늘어놓고 있다. 아마 독자들은 작가보다 더 영악하고 더 때가 묻어있다. 배부른 독자들은 작가가 어느 겨울밤에 만났다는 가출한 여고생과는 원하는 것이 다르다..그리고 거부한다.


이 소설은 수많은 기성품의 교묘한 짜깁기라는 사실은 단박에 드러났다. 하긴 소설이란 그러기에 작은 이야기이다, 좀 진부한 해설이긴 하지만, 사실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진부하다. 고래, 장사, 야꾸자, 단지, 작살, 두메산골, 야생, 방랑, 6, 70년대 소읍풍경, 바람, 홍수, 태풍...개망초, 코끼리, 쌍둥이 자매, 찢어진 천정, 붉은 벽돌집..의 메타포..는 너무 너무 진부하다.


요는 작위를 넘어서는 고도의 장치 결핍이 문제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설을 철석같이 믿고 사는 이 땅의 독자라는 인간들, 그 더럽고 때묻은 녀석들의 어깨죽지를 몽둥이로 힘차게 내려치는 어떤 깨달음의 도래.. 소설은 酸缺상태다. 고래를 다 읽은 독자들은 어느 새 숨을 헐떡이며 죽어간다. 작자는 산결상태를 조장함으로써 독자들을 질식시키는 암묵의 도살자라는 칭호를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수면부족이 낳은 하릴없는 지껄임이라는 사실을 인자사 눈치챘나?)



사십여년 전부터 번창했던 우리 동네 소전(牛市場)은 새 시장으로 변했고, 그 담에 다 헐어버리고 다시 듣도 보도 못한 마젤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주상복합 아파트로 변하고 있지만,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 같은, 그 귀때기에 붙어있던 ‘쌍고동’이니 ‘하와이’니 하던 요상한 다목적 주점은 엊그제야 최후의 근거지, 가설컨테이너 집에서 물러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며 그 앞뒤를 기웃거리곤 하던, 파릇하게 젊었던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봄날, 야심한 밤에,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집을 나선 4학년짜리 소년은 소전을 향해가다, 길가에 찌그러진 채 자빠져있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발견하고, 결국은 그 문제의 ‘쌍고동“집 유리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갔다. 백분을 칠한 채 한복을 곱게 입고 아버지와 술을 주고받던 그 여자를 목격하고 몸서리를 친 기억이 난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달아올랐다.


작가는 아마 다시는 소설이란 것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여기에 소진했다..는 느낌이다. 과연 작가란 고난이라는 이름의 트레이드 마크다. ‘소설가‘란, 영혼과 육체와를 합쳐 포괄로 담보 잽히고 결국에는 갚지 못한 채, 처자를 내버리고, 아니면 이미 없거나, 야반도주를 감행하고 평생을 누군가에 뒤쫓겨 다니는, 죽을 때까지 빚쟁이들의 간고한 독촉에 시달리는, 결국엔 다리미로 피를 말리우고야 마는 불쌍한 운명들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명백해졌다.

그자들은 독자들의 값싼 인질이다.... 마주앙 스페샬 화이트 리스링 한병 값이면 원하는 대로 골라 잡을 수 있는,, 좌판, 먼지에 뒤덮힌 채 그 얄팍한 간교를 팔아야 만 겨우 커피한잔 벌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들.


문학동네의 11회 걸친 수상작중에 단 한편을 읽었다. 작가를 존중한다. 하지만 지나친 찬사는 몸에 해롭다. 쓰잘데기 없는 헛말만의 찬사를 엮은 뒷장들은 찢어서 두어번 힘주어 구긴 다음, 뒷간에 걸린 못에 꽂아두라고 권하고 싶다. 일말의 도움이 안되는 개소리들이다. 소설은 점점 그 땅을 내주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소설가란 단어는 ‘칼국수를 파는 자‘등등으로 정의가 뒤바뀔지도 모른다. 정감록이나 읽어야겠다. 누가 간혹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인지....아직 그는 오지 않고 있다.


작가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박박밀은 머리, 돌출한 양쪽 광대뼈의 순수, 하얗게 밤을 밀어버린 양 눈썹 돌출부에 가벼운 키스를 보낸다. (신이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일요일 아침이다. 직직거리는 LP판으로 변도변의 ‘전원 교향곡’ 을 들을 시간이다. 인분, 거름냄새 향긋하고 나긋하고, 느긋한, 그대의 봄날이 왔다.


딴딴딴딴 딴딴딴딴 딴딴딴따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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