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푸르른 틈새, 권 여선

eyetalker 2007. 3. 1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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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1996년 살림출판사.


신문의 서평을 읽고, 동해서 책을 구해 읽다보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게 되고, 어떻게든 그 땀내나는 일을 마치고 내려놓으며 그래서 자조적으로 내뱉는 말은 항상 이런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고.


여러 서점들에서 ‘절판’선고를 받고 있던 이 책은 인터넷에 서점을 세운 중고서점들에도 없었고 겨우 옥션에서 경매라는 까다로운 절차까지 거치면서 구해 읽었다. 병든 모친을 모시고 덕소와 평택과 송탄을 돌아와 지친 몸을 누일 곳을 찾아 집에 기어들어오니 박스에 갇힌 이 책이 홀로 식탁위에 던져져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외쳤다. “ 야 이 새끼들 증말 빠리네!”


작가는 65년생이다. 소설속의 화자를 자신과 동일시 말라고 이상한 음란소설의 예를 들어 (카프카가 쓴 것이 음란 소설인가?) 강변하고 있으나 1984년도에 관악산기슭에서 학교를 다녔고, 술을 즐겼고 (음,,, 아내와 결혼했다의 아내도 술을 끔직하게 즐기더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생을 불화하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등등 지나친 사실적 예증에 의하면 화자와 작가는 “거의” 동일개체라고 간주할 수 밖에 없다. 독자로서는. 아니면 왜 사진을 이리저리 걸어둔 거유?


‘틈새‘앞에 푸르른 이란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를 붙인 것도 의심을 산다. 참고로 엊그제 신문에 소개된 이 작가의 근작 소설제목은 ’분홍리본“인가 뭔가다. 후후,, 사실상의 원제는 ”푸르른‘ 틈새가 아니라 ’분홍빛‘ 틈새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틈새는 다름아닌 가랑이 사이의 그 부위를 말하려 했었다는 혐의가 짙다.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위치임에도 인간들은 성의 종류를 막론하고 깊은 관심을 표시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각,느낌 그리고 통과해야한다. 그러지 못한 녀석들을 우리는 아직 유아기에 있다고 하거나 구순기에 있다고 하니까.


그렇고.


80년대 후일담 아닌가? 작가에 대한 상찬을 떠벌리는 녀석의 아가리에 축구화를 박아넣어라. 그때는 다 그렇게, 더럽게 굴면서 살았다. 그나마 그대는 누군가들처럼 반추운동을 일삼는 무리에 속하지 아니하였기에, (그다지 알려 지지않은 작가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그 짓으로 떼돈을 벌거나 위선적인 이름을 팔고 다니지 않았기에 독자들로부터 그 뺨에 키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성장소설이다. 그래도 좋다. 문학소녀적 애상만 애써 지워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번에는 쌔 면도칼로 확~!! 깊숙하게, 그어내 버려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ㅈㅣ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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