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 했다. 박현욱. 2006년3월10일 문이당.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일요일 아침이다. 지난 밤부터 읽다 새벽잠 깨어 다시 읽어나가 이제사 독료다. 흥미진진하다가 종반전에는 약발이 떨어지는 통에 좀 그랬으나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서로 느긋하자.
누군가 말했듯이 독서란 어차피 우리의 잠과 의식사이에 존재하는 불분명한 그 무엇이다.
작가는 67년 생이다. 생긴 건 소설가스럽지 않지만, 책 뒷장에서는 명망있는 작가 서넛이 모여 매우 후한 점수를 매기고 있다.(생긴 것과 필력이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심한 발언이다.) 그 중엔 의례적인 것이 분명한 언급도 있는 듯하다. 결정적인 매료가 없는 것 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나, ‘魅了‘란 단어는 그리 쉽게 던질 수 있는 부류의 말이 아니긴 하다... 지난 10년간 단 한번이라도 무엇엔가 ’魅了‘된 적이 있는가? (돈 빼고..) 당신은?, 없으면서..나에게 사팔눈은 뜨지 않겠지? 눈 운동을 한 것이라면 용서한다..
우선 좋았던 점,, 잠시 감명깊었던 것은 P 35의 몇 구절.
-Quote-
“그녀가 FC바르셀로나의 팬이 된 것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루냐 찬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Unquote-
(좀, 좀 스럽긴 하지만, ’칙‘하게 발언하자면, 발기할 만큼 좋았다. 이 여자 마음에 든다.)
뒤이은 구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류는 정의도 패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폭력이 정신을 꺽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그에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스페인으로부터 배웠다.” -카뮈-
(당시만해도 카뮈는 무척 순수하고, 따라서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소설은 유럽축구, 그 중에도 프리메라리가, 그중에서도 엘 클라시코라고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간의 축구쟁투를 한축으로 하고, 나외 또 하나의 남편을 거느리는 한 수퍼모던 걸을 주인공들로 한다. 사회학과 출신인 작가는 어떤 유명 사회학자의 시각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사랑에 관한 다종 다양한 해석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고서가 되어버린 E. 프롬의 The Art of Love말고는. 이 소설의 텍스트로 쓰인 다종의 사랑관련 이론서의 목록과 마주치기 전에 이미 나도 ‘사랑, 그 환상의 물매’란 책을 주문해 놓고 있었지만.)
‘앤서니 기든스‘란 사람이 있단다.
-Quote- P178
사랑은 열정적 사랑, 낭만적 사랑 (‘낭만적 사랑과 사회‘란 소설이 있었지? 작가와 동문인가? 작가는 연대 사회학과 출신이란데..), 그리고, 합류적 사랑으로 구분..
열정적 사랑이란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형태. 앞뒤 가리지 않는 맹목적 사랑이 곧 열정적 사랑이다... 뇌의 화학작용의 결과...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는 시기에 신경전달물질 도파민(비타민이 아니다..)이 만들어져 행복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페닐에틸아민이 만들어져 천연각성제 구실을 해서 열정이 분출되며, 그 다음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성적충동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런 사랑에 빠지면 현실감이 사라지기도 한다....그래서 오래가지 못한다.....병균이 침입하면 몸이 대항하려 하듯 사랑에 의한 비정상적 상태에서도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사랑의 지속기간은 대략 30개월 미만이라고한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 낭만적 사랑이다. ... 열정적인 사랑이 성적 매혹과 불가분의 관계인 반면 낭만적 사랑은 정신적인 것, 영혼의 만남을 우위에 둔다...낭만적 사랑에 있어서 상대방은 자신의 결여를 메워주는 존재이다. 낭만적 사랑은 불완전한 개인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관점에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합류적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열어보이는 것이다. 즉, 서로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사랑의 유대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합류적 사랑이다.
(이 것만으론, 의미가 그다지 확실하게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앞의 두가지 사랑을 모다 뛰어넘는 (물론 달콤한 육즙을 포기하지는 않았겠지만, 낭만에 더한 개인적 성찰, 자각같은 좀더 젠체하는 사랑? 그런 것인가?) 내면적 사랑의 차원 같은 것인가 보다..)
- Unquote-
복잡하다. 소설을 읽어다오. 소설 읽어주는 여자? 오래 된 소설인데.
p 209. 얼씨구, 자쿠 데리다는 (양복만드는 사람인가? ‘자쿠’라니. 긴자꼬?.),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quote-
“결혼이라는 단어와 개념으로부터 모호함이나 종교적 위선을 제거하고, 이를 섹스 파트너들 또는 여러명 사이의 자벌적이고 유연한 규약인 ‘계약적 시민결합‘으로 바꿀 수 있다.”
-unquote-
음...현대를 사는 누구나가 그 ‘모호와 위선‘을 깨달아가고 있는 이 제도는 거의 궤멸 상태에 있는 것이 이제 확실해졌다. 끼리끼리 모텔방에 모여 지구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축구중계나 보고 있던 와중 방어선은 이미 깊게 뚫려있고, 성균관 유생들이 한 놈 빠짐없이 가미가제특공대로 입대해서 엥꼬난 제로 센을 타고 도회의 불야성을 공격하다 여기 저기 빨래 쪼가리같은 십자가들처럼 장렬히 산화한다고 해도 전쟁은 끝났다. 결혼이라는 이름의 ’내지‘는 모텔로 끌려들어와 입구에 줄줄이 늘어선 채 저마다의 금빛 플라스틱 신분증을 내고, 항복사인을 하고 계단을 올라가, 가랑이를 벌리고 누워야 하는 치욕을 피할 수 없게 된 것.
새벽이 오고, 제도 바깥에서의 생존이 불가피함을 상정하는 패자들은, 자기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남아있는 지, 좀 덜 멍청한 녀석이라면 자신이 또는 상대가 앞으로 몇 년동안 얼마나 더 벌어들일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지를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리라.
‘아내와 결혼했다‘
이 소설의 미덕은 저 간교하나 비현실적으로 침착한 한 여자, 그의 아내를 이 세상에 내보낸데 있고, 책임은 작가에 있다. 흔히라면, 주인공이 던진 주먹은 제3의 남자가 아닌, 당사자, 그녀의 콧등을 박살내고, 콧등을 세운 잔혹한 킥 슛은 애꿋은 맥주깡이 아닌 그녀의 배를 가르고 들어갔을 것이기 때문. 그러나 작가는 도망쳤다. 독자들만 무방비 상태로 남겨둔 채 ‘뉴질랜드’ (=새로운 욕정의 땅)으로..
그럭저럭 재미있다. 돌아온 봄의 일요일이다.
공이나 한번 차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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