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2004.1 마음산책.
철학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저 드높은 성채 안에 잠복한 숱한 이름들은 도대체가 나와는 혈연을 맺을 이유가 없는 종자들인 것이다. 단박에 드넓은 해자를 메우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지혜마저도 없는 나는 그저 국어사전 한권을 달랑들고 사유의 창칼 번득이는 철학의 전장으로 나아가야만하는 소위 ‘인문학’의 소총수요 그 중에서도 선봉에선 ‘철학’의 총알받이 신세.
목감기에 걸린 터라, 동내에서 성업중인 웰빙사우나에 들러 소금가마에 들어앉아 땀을 비처럼 흘리며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소한 듯한 우리네 ‘사랑’을 정의하는 철학자의 발언은 초장부터 삼엄하다. 아~ 차라리, 세큐레가 연고를 들고 상처에 발라주며 정의하는 ‘사랑’쪽이 훨씬 더 살 떨리고 정감이 있는 쪽이건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큐레는 철학자는 아닌 것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사랑의 대체는 초기증상과 어떤 후유증의 범벅이지요.... 환상의 물매라고 한 것도, 사랑은 무었보다도 그 열정의 기울기에 따른 사소한 차이들의 나르시시즘이기 때문이지요.”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랑의 표피에 던지는 한 마디로 어떤가?
철학자는 ‘사랑‘의 양상을 해석하려 의도하고 있다. 8-90개의 소제목은 각기의 시각을 벼리 고있다. 시퍼런 날은 당신의 폐부를 깊숙이 찔러 기어코 피를 흘리고야 말 작정이다.
우선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한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의 언명을 읽고 해석하는 형식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죽는다’거나 ‘ 가끔 망각하지 않는 여인은...추억의 긴장으로 죽어간다.’
이어 역사, 문학, 종교속에서 빌려온 서사는 끝간데 없이 계속된다. 저마다의 구름같은 사연과 통찰을 안고 주억거리는 양떼를 모는 목동처럼 굽이굽이 그 달뜬 사랑의 오솔길을 걷는다.
사랑에서 언어는 무엇일까? 사랑의 언어는 연인이 사랑을 실어나르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이며, 어떻게 말하자면 더 이상의 사랑이 없을 정도의 사랑이다. 失戀은 어떤가. 실연은 사물들이 먼저 알아챈다. 그러므로 ‘가구며 등잔이 똑똑해 보이기 시작한다.’.. ‘물상들은 부정적 의미의 攝動에 휘말리고....’ 그러니까, 당연한 어떤 힘, 작동을 부정하는 부차적인 동력의 영향으로 흔들린다는 뜻이다.
다시 사랑이야기다. ‘애인의 살에는 정신의 結節點이 보이지 않는다. 문자도, 이치도, 깊이도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은 어떤가? 바기너의 표면엔 철학자가 찾는 결절대신 포신의 내부에 난 나선형 피치는 분명히 각인되어 있다지만 그 이야기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결절이 필요한 이유는 과연 무었?
P40
일부 사회학자들은 혼인제도를 유지시키는 요인들로서 배우자 사이의 열정, 친밀감, 의무감등을 거론한다. ‘열정-> 친밀감-> 의무감‘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열정이 식으면 귀결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어차피 열정이란 그 속성상 휘발하게 된다. 차라리 열정이 분배를 통하여 지속가능한 애정의 형식을 개발할 것인지....J.S.Mill의 지론처럼, 매사 열정의 순도나 강도가 진실을 증거하지 못한다... 불꽃같은 정열은 흔히 상상적 나르시시즘의 징후(에 불과하다.)
P50
원시인들의 곱고 어리석은 심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영역이 바로 ‘사랑’이라는 곳이다... 연인들은 그가 ‘연인’이라면 , 무엇보다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하고 안타까워한다. ‘사랑’이란 대개 ‘安心’이 없는 상태로... 戀情은 그 본질이 안심을 얻지 못한 상태요, 결국 煩惱의 한 단층이다.
‘사랑’은 마음의 거래방식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한 마음을 주려고도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생활이다.
p79
사랑의 지난한 움직임도 ‘꿈과 현실을 높은 차원에서 종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동물적 성애에서 출발하면서도 줄곧 사랑의 이념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모든 에로티시즘이 메타에로티시즘으로 넘어가는 이유는 사랑의 일차적 리얼리즘에 ‘높은 차원’이라는 알리바이를 담고 싶은 이유와 일치한다. ( 메타에로티시즘이란 메타센터에 나오는 어떤 기울어진 중심, 경심된 에로티시즘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뭔가 달라져 기울어졌다, 극단화 되었다는 뜻일까??)
p86
길게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랑은 하찮은 것들로 구성된 귀중한 짓이다. 혹은, 귀중하다고하는 기표들로 구성된 하찮은 기의(起義?. 機宜?) 다. 고쳐말하면 사랑이란 하찮은 것들이 ‘순간증폭’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열정을 키웠던 ‘순간증폭’이 끝나고 우리가 정녕 하찮은 것들을 하찮게 대할 수 있는 날들이 오게 되면 사랑의 오랜 榮辱도 마침내 그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p104
사랑, 없는 질병의 초기증상.
봄날이 다 갈때까지, 너는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오직 그 질병의 초기증상만으로 울고 웃으리라.
P110
연인들이라는 인간들 사이의 의미생성과 교환의 과정은 극히 격렬하고 은밀하다. 바르트는 이것을 ‘의미의 도가니’라거나 ‘미묘하고도 은밀한 기호들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P117
가부장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그 여자의 攝動이다. 말하자면 副詞처럼 째즈화 되어버린 그 여자를 가부장은 참지 못한다.( 아! 부사여! 모든 이데올로기의 적이여!).... 膣을 가진 노동기계, 그 얼굴이 예쁘게 지워진 인형이라는 가부장의 꿈은 아직도 계속된다..
P137
비합리성의 징표중의 하나는 ‘머뭇거림’이다...짐승들에게 머뭇거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흔하지도 특유하지도 않다. 머뭇거림은 우선 섬세한 분열, 즉 고도의 자의식이 가동하는 징후이기 떄문이다.따라서 인간은 그 근본에서부터 정신분열적일 수밖에 없는데....어떻게 보면 인간은 극히 부실한 일시적 봉합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존재인 것이다. 기억상실증이나 치매를 통해서 자아정체성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비근한 모습을 보노라면 자아감의 통합이라는 것이 마치 미립자 세계의 구조물처럼 얼마나 속빈 강정 같은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p213
.. 가령 베이컨이 ‘처 자식을 가진 사람은 운명의 손에 인질로 넘어간 자’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듯이..
p222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공감이라고 갈파한다면’, 그 이치의 변증법은 얼마난 깊은 것일까? 그러나 일상적인 사랑의 행태를 유심히 보노라면 그 행태의 대부분은 동심원적 공감파의 리듬을 타고 이루어지는 조화가 아니다. 오히려 공감의 동심원 외부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탐색, 불안과 초조, 원망과 환상속에서 그 열정의 형태는 각축한다.
신윤복의 그림, “月下情人“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은 조선조의 청춘남녀의 정념도 진정 이시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있으나, 어쩌면 당연한 것.
철학자는 P255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두 사람조차 모른다는 사실속에 사랑의 진실이 맥동하는 법이라는 해석을 남긴다.
畵題는 이렇다.
“달은 기울어 밤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안다.”
다 읽었다.
결국, 사랑은 사그라지는 것 것임을 알고 시작해야 끝을 낼 수 있다. 물론 따귀 몇 대로 급브레이크를 대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ㅈㅣㄴ 2007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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