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其.2
버트란드 러셀
Marriage and Morals. 1929년,런던.
러셀은 왜 이 한권의 책 때문에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법정에 서야했나?
p91
4. 가부장제냐 모계사회냐
결혼이라는 관습은 언제나 세 가지 요소가 혼합된 것이었다. 그것은 막연하게나마 각각 본능적, 경제적, 종교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어쨌든 젓을 뗄때 까지는 긴밀한 육체적 유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이고 가설적이며 추리적이다.
p99
父性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전혀 새로운 요소가 아버지라는 감정속에 들어가 그 요소가 거의 모든 곳에서 가부장제 사회를 만들어 내었다. 자식을 성경에서 말하는 ‘씨‘같은 것으로 인식하자마자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감정에는 두 가지 요소, 즉 권력에 대한 사랑과, 사후에도 살아남으려는 불멸에의 욕망이 강화되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질투심이 극히 강한 것은 자손의 위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정통의 자식은 남성 자아의 연장이며 자식에 대한 애정은 이기주의의 한 형태이다. 부성의 발견은 아내의 정조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여성의 隸從, 육체적, 정신적 예종을 낳았다. 이러한 예종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남편과 아내의 진정한 우애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p108
가장 음탕한 사회에서 금욕주의가 싹튼다.
p112
... 불행히도 기독교 윤리는 이러한 퇴폐적이고 병든 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후세의 원기 발랄한 남성들은 생물학적인 가치와 삶의 지속에 관한 모든 의미를 상실한 , 병들고 지치고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형성한 인생관에 맟추어 사는 데 그들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p.115
5. 기독교 윤리와 로맨틱한 사랑
..성 바울은 결혼이 존재하는 것은 아이들을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간음의 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매우 기이한 결혼관을 도입하였다. (고린도 전서를 읽어볼 것.) ‘간음‘은 언제나 그의 사상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의 성윤리 전체가 이와 관련하여 짜여졌다. (왜??)
p121
금욕주의가 사람의 마음속에 순결이 중요하다는 깊고도 지속적인 확신을 새겨준 공적은 크지만, 그것이 결혼에 미친 악영향도 이에 못지않았다. 교부들의 방대한 책속에는 결혼에 관한 아름다운 기술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이 제도에 대해서 그들이 생각하는 태도보다 더 보잘 것 없고 불과한 것은 좀체로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죽음의 파멸을 보상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자연이 만들어 놓은 관계, 그리고 식물학자 린네가 지적했듯이 꽃의 세계에까지 이르는 관계가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한결같이 취급되었으며 오로지 결혼의 가장 낮은 측면만이 생각되었다. 결혼이 자아내는 부드러운 사랑, 그것에 따르는 신성하고 아름다은 가정적 특성은 결코 고려되지 않았다. 금욕의 목적은 사람들을 순결한 상태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 필연적 결과로 결혼은 열등한 상태로 간주되었다.
-W.E.H.Lecky. 유럽도덕의 역사.-
p 123.
..정통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결혼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성바울이 인정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이를 낳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도덕은 결혼생활에 있어서만 합법적일 뿐 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사이라도 임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죄가 되었다.
p 140
..로맨틱한 사랑이야말로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강렬한 희열의 원천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열과 상상과 부드러움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관계는 측량 할 수도 없는 가치를 지닌다. 누구든 그러한 감정을 모른다면 대단히 불행하다 할 수 있다.나는 사회제도가 이러한 기쁨을 마땅히 허용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완전히 근대에 들어와서, 즉 프랑스 혁명무렵부터 결혼은 로맨틱한 사랑의 결과여야 한다는 사상이 대두하였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혁명적 변혁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 이 책이 1926년 작이란 사실을 다시 상기하라.)
6. 매음과 계약결혼
도덕이 엄격할수록 매음이 성행한다.
현재 존재하는 매음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삶이다. 그 자체에 있는 질병의 위험성만 보더라도 매음은 납 공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위험한 장사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쳐놓더라도 그 생활은 퇴폐적이다. 그것은 게으르고, 음주에 빠지기 쉽다.... 그것은 본능에 어긋나는 생활이다. 마치 수녀의 생활이라는 것이 본능에 어긋나는 생활인 것처럼..
p149
性에 경제적 동기가 포함되는 것은 언제나 다소간 불행한 일이다. 성교는 상호간의 기쁨이어야하고 오직 남녀의 자발적 충동에 의해서만 행해져야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7. 인구와 우생학
출생율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저하되고 있으며 오늘날 (1926년 영국) 의 그것은 9년전의 부자의 그것과 같을 정도로 낮다.
p183
나처럼, 성행위는 아이를 낳는 한에 있어서만 사회와 관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장래의 도덕률에 관해서 이러한 전제로부터 이중적 결론을 이끌어 낼 것이다. 한편으로 아이와 관계없는 사랑은 자유스러워야 한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 아이를 낳는 문제는 현재보다 훨씬 신중한 도덕적 고려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8. 인생에서 성의 지위
그릇된 성교육은 죄의식과 공포감을 낳는다.
삶의 한시기를 형성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짓궂은 장난, 음란한 짓, 금지되어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지나치지 않는 한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죄와 수치와 공포가 아이들의 생활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행복하고 명랑하고 자발적 이어야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충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연적 사실을 탐구하는 데 주눅들어서는 안 된다.
p195
결혼은 인습적으로 용인된 성의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그 자체 엄격한 계율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양가에서 자라난 소녀는 구애를 받았을 때, 진정으로 상대방 남자와 마음이 맞는다는 것과 단순한 성적매력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를 성적으로 눈뜨게한 최초의 남자와 쉽사리 결혼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성적인 굶주림이 만족된 후 자기와 그 남자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이다.
p201
성은 먹고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이다. 물론 인간은 성없이도 살수는 있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견지에서 볼 때 성에 대한 욕망은 음식에 대한 욕망과 흡사하다. 억제하면 대단히 강해지고 만족시키면 일시적으로 진정된다. 또 절박할 때는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다른 모든 관심은 사라지고 잠시 후면 본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미친 짓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성적인 욕망은 음식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지하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9. 현대의 가족과 국가
행복한 여성만이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가족생활이 어린이에게 좋은 심리적 영향을 미치려면 양친, 특히 어머니의 성생활이 불행해서는 안 된다.
10. 인생에서 사랑의 지위
p235
사랑에 대하여 대개의 사회가 취하는 일반적인 태도는 이상하게도 이중적이다. 나는 사랑을 인생에서 기징 중요한 것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올바른 의미에서 사랑이란 남녀간의 관계라면 뭐든 다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감정을 내포하는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오늘날 사랑에는 종교보다 더 위험한 다른 적이 있다. 그것은 노동과 경제적 성공이라는 신조이다.
p239
사랑이란 성교에 대한 욕망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통해서 남녀가 겪게 되는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냉혹한 세상과 군중의 잔인성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이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애정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것은 남자의 경우에는 난폭하고 야비하며 뽐내는 태도 속에, 여자의 경우에는 성가신 잔소리 뒤에 감추어져 있곤 한다. 서로의 정열적인 사랑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러한 감정은 소멸한다. 그것은 자아라는 단단한 벽을 부수고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새로운 존재를 낳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고독을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 인간은 타인의 도움없이는 자연이 명령하는 생물학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명인은 사랑없이는 성적본능을 충분히 만족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전존재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러한 관계를 맺고난 연후에야 본능은 비로소 완전히 만족할 수 있다.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깊은 친애감과 굳센 공동의식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좋은 것을 놓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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