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리본의 시절. 권여선. 2007년 2월 27일. 창비.
발정난 개가 전봇대든, 지 사는 개집 모서리든에 대고 정신없이 비비거나 할 때 그는 아마 드넓은 대지, 아니 동리로 나아가 비슷한 짐승들과 흘레 붓기를 열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의 체념이 부른 것이, (그의 목에 쇠줄이 달려 어딘가 견고히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먼저 고하지 않았다) 아무데나 대고 정신없이 비벼대거나 아니면 기이한 굴신의 묘기를 부리며 자기 똥꽁무니를 단속적으로 핢거나 하는 기묘한 행위다. 요는, 이것은 체념의 미학이 체화되고 자연스러움의 경지를 획득한 개의 철학적 삶의 일부인 것으로 인류에게 인식되어있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개의 목줄 푸는 것을 까먹은 것이 아니라면 몰라도 원래 개는 자연을 잠행하는 늑대의 일족이었다.
개의 목줄을 푸는 행위가 소설읽기이다. 나는 개다. 소설읽는 풀려난 개 말이다. 한동안 뜸하던 섹스를 생각난 듯 몰아서 하는 것이 나의 질박한 본능적인 특유의 특성중 하나인 바 (발정이다) , 소설읽기도 비슷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장안의 지가가 조금 오를 듯 할 때까지 사 읽어 제끼고, 며칠씩 연이어 밤마다 그 짓을 하고 난 후 조갈이 어느 듯 사그라들면 다시 무욕의 일상으로 복귀하곤 한다.
해욕의 스타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혹 궁금해 할까봐. 그렇고, 권여선의 신작은 여러모로 함량미달이다. 작가 자신은 이런 제품을 QC작업도 없이 겁대가리도 같이없이 출판한 짓이 경주구경 간답시고 세살배기를 달고 갔다가 해질녁에 집에 갈 때는 혼자서 낼름 귀경열차를 타고 가 버린 그 신문속의 못된 에미같은 짓이라는 걸 알고는 있을까? 미아는 아직도 역전을 헤매며 엄마를 찾고 있고, 인포르마치온의 경찰들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절씨구, 책 뒷표지에서 ‘공선옥‘이는 이런 말까지 하고 있다.
“.. 권여선이 그려내는 인물들 속에서 나는 너른 풀밭도, 꽃밭도 아닌 ‘아스팔트 틈새에서 솟아난 민들레 싹’을 느낀다...... 기어코 꽃을 세우고야 마는 생명력, 권여선이 끓이는 ‘문학적 약콩’은 험한 삶의 조건을 딛고 살아보려고 애쓰는 생명들에게 분명 값진 약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보다 문장력이 부족한, 사기성이 좀 모자라서 좀 어설픈(슬픈), 어리버리해 보이는, 작가에게 던지는 선옥의 한마디는 무성의하다 못해 표지를 찢어발겨버리고 싶게 만든다.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고 제목만 읽고 갈기는 무심한 한마디에 악마의 아들이 충격먹고 죽으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저리도 무심한 지 알 수가 없다. 권여선이의 인물들은 전혀 약콩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점을 아시는지? 그녀의 세계속에서는 술과 담배가 필요할 뿐이다. 비린내나는 조기 몇 마리는 안주감. 민들레는 씨가 중요한 거지 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작위에 바쁜 작가의 허위에 그칠 라면같은 발언이 나의 속을 끓인다..
이 소설에서 읽어야될 두편은 순서대로다. 작가는 이 점을 자각하고 있었다고 봐야겠다. ‘가을이 오면‘은 일견 ’좋은 듯한’작품이다. 교과서적 플롯, 무미건조에 약간의 히네루를 준 문체, 전개...그런데 이 ’식상감’은 부패초반의 ‘쌩소설’, 이런 음식이 있다면, 같은 독후감을 피할 수 없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생지적, 생득적 천재의 영역이다. 소설쓰기란..)
표제작 ‘분홍리본의 시절’은..좋았다. ‘곰발바닥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비록 작가가 로서는 해선 안될 일종의 금기를 ‘애교스럽게’ 범했다. 하지만 너그런 맘으로 독자들은 용서할 것 같다. ‘膣’이 안좋은 여자, ‘質‘이 안좋은 여자의 경우도 매우 뛰어난..일종의 ’고찰’의 산물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느껴졌다. ‘짭새‘, ’사과탄‘, ’서점’, ‘책’등 시대적 고어에 해당하는 유사표현의 조심스런 배치에서 작가는 아직도 유아기적 불안, 어머니가 없어지면 나는 버려진 존재로 혼자서 칠흑의 우주를 떠돌 것이라는 지극한 불안감에서 해방되지 못한 존재라는 느낌을 흘린다.
나이때문일까, 박완서의 (초기작 빼고) 작품과 비교하면 같은 여자라도 너무 다르다. 완서의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 왜 여자들은 팍삭 늙어야만 제대로, 글을 잘쓰는 것일까... 여성작가들이 담배를 애호하는 이유란 아마도 빨리 늙어서 좋은 글을 ‘일찍 늙어(?)’ 쓰내기 위한 것일까...흠,,, 그거였어? 여성작가들이 유독 담배와 술을 즐기는 이유의 속내란 것이? ‘천한 세상 암컷들과 외견적 차별화’가 아닌 숭고하고 심오하되 좀더 ‘현실’적이기도한 내면적 이유가....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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