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色이 붉은 색을 빼앗다.
김영민 지음. 2001년3월. 동녘
“무늬만 남고 얼룩은 가라.”
진리에 대한 저자의 추구를 압축표현한다면.
단풍의 자줏빛이 석양의 붉은 빛을 받아 더욱 강렬한 자색을 뽐낸다는 의미인가보다.
저자는 심지어 도보, 보행에 이르기까지 그 철학적 방법을 대입. 이것은 이때까지는 종교의 경지였거나, 걷기의 狂이었던 럿셀같은 철인의 전유와도 같은 습속. 그들은 알았다, 보행이야말로 자는 것 다음으로 , 색스 다음으로, 인간으로서 가장 편안한 삶의 자세라는 사실을.
이런 저런 쿼트.
{순수주의는 더럽다}
P12
순수를 힘있게 외치는 것이 이미 무지와 맹신의 표시처럼 돼버린 시대....순수주의는 이미 자신의 근거를 의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기는 삶의 복잡다단한 토양과 그 유심현묘한 이치들의 지형을 배려하지 않는 양극주의이자 단순화의 오류가 굳어진 것.
P13
자의적 정략적으로 설정한 순수이데올로기의 체제에서는 근거가 빈약할 수 밖에 없는 자기 정당성을 변명하고 강변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과 배제의 정치에 더욱 열성적인 법.
K.Popper, " 추상적인 선을 주장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라“
불교, “ 진리를 추구하기에 앞서, 바로 그 妄執에서부터 벗어나라”
p14
문제는 순수주의다. 이 비관용의 특권주의는 흔히 종교와 신화까지 동원해서 그 독선의 체제를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이를 위해 순수-비순수의 차별적 이분법에 따라 배제와 박해의 정치를 계속한다
p15
G.Bateson, 정신과 자연(1980), “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현상도 시간을 감안해서 재구성하면 스스로 모순에서 풀려난다.”
p16
니체가 늘 존재와 대비시켜 강조하는 ‘생성’의 철학이 시사하듯이, 중요한 것은 진리로 화한 우상, 바로 그 우상이 생성된 배경의 내력에 묻어있는 시간의 흔적을 캐내어 백주대로에 폭로하는 일
p16
믿음의 강도가 믿음의 진정성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점,....믿음의 강도다 오히려 오류의 강도를 역으로 증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놓친다. 일찍이 밀이 자유론(1895)에서 지적했듯이, “인간이 진리에 대해 보이는 열정은 인간이 가끔 오류에 대해서 보이는 열정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p19
曹植의 말처럼 인문정신이란 정밀함과 묵힘(熟)이 더불어 이루어 가는 지혜의 지평인데,..
p20
.. 차분히 일상을 관찰해보면,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는 무심한 ‘典型’- 김우창이 인문학의 주요 테마로 내세웠고, 내가 “컨텍스트로 , 패턴으로”(1996)에서 상설한 바 있는- 이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고 있지만, 시대의 화두처럼 군림하는 ‘새로운 것’의 욕망과 환상은 강박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새로운가? “인지되지 않는 차이는 인식론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명제의 틀을 빌어말하자면, “우리 삶의 질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물질적 새로움은 인문학적으로 무의미” 할 수 있지 않은가?
p26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는 비유처럼 지금의 인류는 그 어느 시점보다 시간의 템포를 뚜렷이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날로 강도를 더해가는 템포만 있을 뿐, 그 템포에 실린 에너지와 열정을 조화롭고 창의적으로 병치시키며 미래의 삶의 지평을 전망할 수 있는 길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속도주의‘의 요체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자기 열정에 취해서 콩닥거리는 수많은 삶의 열정, 그 수난뿐, 이들이 함께 어울려 엮어나갈 미래의 시간 지평은 어디에 있는가?
p32
아무튼 “ 인간이란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며,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진 그림처럼 그 인간의 모습도 지워질 것”이고, 마찬가지로 “세계는 인간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없이 끝날 것이다”.
(미셸푸코, 레비 스트로스)
표현인문학.
“인문학이란 일차적으로 문자, 그리고 이차적으로 비문자를 포함한 문화활동을 통해 사람다움의 표현을 모색하는 노력”
p34
근대 인문학의 중요한 한 갈래는 무엇보다도 ‘쓰기(표현)의 인문학’으로 나아간다. 해석학적 성취에서 그 정점을 이룬 ‘읽기의 인문학’을 급속히 보완하고 있는 이 갈래는, 보기(플라톤)-> 듣기(헤겔, 하이데거)-> 읽기(쉬라이에르마허, 가디머)-> 쓰기 (로티, 데리다)-> 걷기(?)로 흘러가는 서양 철학사의 맥락, 그 한 단층을 잘 보여준다.
p38
.. 하지만 인문학이란 워낙 ‘정신의 방랑’을 주제로 삼아온 공부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인문학의 활로는, 그 근본적 차원에서 정신의 배회와 방랑을 활성화하는 갖은 노력의 集散과 관련되어야 할 것이다.
p49
주체성 없는 농축근대성에 이어 등장한 텅 빈 강정같은 우리의 탈 근대성은, 니체의 표현을 빌면 ‘다리가 없는 진리’같은 허깨비
p54
어떤 사상과 종교도 페쇄적 근본주의로 흐르게 되면 인간을 관념과 집착의 미라속에 구금하여 썩게하거나 이웃을 폭력의 수렁에 몰아 넣는다
p62
공자 曰 , 成於中形於外 ‘속에 생긴것은 겉으로 드러난다’
p66
茶山 曰, 사나이는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도적의 기상이 있어야 한다.
p76
“자본주의적 삶의 본질적 양식은 피곤“
p84
의사, 전문성의 파시스트들
‘지식의 형태를 띤 채 교묘하게 권력이 행사된다’는 푸코의 지적
p129
개성과 신념을 뚜렷이 표현함으로써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책임성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유주의자의 가장 큰 특징이며 미덕. 극우 파시즘과 극좌적 경향을 동시에 비판.
p133
한국사회가 주력해야할 최대 현안으로 ‘심층근대화’를 꼽아왔다. 농축, 과도,표피,편파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근대화를 인문사회학적으로 반성하고 ...
포퍼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둘다 미쳐버린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균열이었음”을 자각하고 ..
우리가 꿈꾸는 화이부동의 자유로운 사회, 생각은 박멸할 수 없고 체제는 합의의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한 사회, 오직 공정한 대화의 결과만이 우리의 장래를 결정하는 사회..
p135
혹자들이 우리식 근대화가 초래한 최대의 불행을 ‘정신의 황폐’라고 하듯이, “새는 좌우 양 날개로 난다“ (이영희)는 지헤가 어렵사리 수용될 때 까지 그 극단의 대립구도에 구금된 우리의 현대 정신사는 끝없이 황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p165
구한말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탈을 겪으면서부터 세계화주의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아쉬워했던 ‘과학기술력’의 맹아와 그 전망은 당대최고의 문명 교섭지에서 9년동안 볼모의 생활을 마치고 바야흐로 귀국을 준비하던 32세의 청년 소현세자의 가슴속에 이미 꽃피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의 생부 인조의 비정한 몽매주의에 의해 소현은 귀국하자마자 독살당하니...
p190
무릇 날개를 지니고 있는 존재로서 이들처럼 흐느적거리는 종류는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이런 뜻에서 나비는 ‘원칙이 아니라 원칙의 에외를 위한 존재’라고 해도 좋을 듯하며 따라서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존재이다.
p 236
러셀(B.Russell)이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결혼과 도덕”에서 결혼 적령기의 남녀에게 그 준비과정의 일환으로 동거를 권유한 것은 1929년 이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한 열정으로 , “진리의 추구”,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사랑의 꿈”을 내세웠는데,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 적지않은 염문의 이력은 이 열정의 고단함을 증거한다.
p271
오스카 와일드, “ 자신의 형식을 계발하지 못하는 자는 영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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