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Primo Levi,, 이현경, 돌베개,2007.1
Il Sistema Periodico.
원작은 1975년작. 너무 오랜 책이라 참신성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작가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출신 유대인, 화학전공자. 2차대전당시 아우슈비츠까지 끌려갔다가 화학전공자라는 전문기술, 지식을 인정받아 합성고무공장에서 근무하다가 해방된 후, 귀향, 은퇴할 때까지 화학공장- 페인트 원료인 니스 공장에서 감독으로 근무하며 작가 생활을 한다. 이탈리아 현대문학작가로 외부에 알려진 몇 명되지 않는 유명작가.
내용은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각종 원소를 놓고, 그 원소와 관련된 화학적, 철학적 코멘트 , 수필, 소설등등 잡다한 ‘이야기’ 연작.
2차대전을 전후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있다. 이곳 저곳,화학 실험실, 공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느낌 자체는 무척 생생한 편. 단편 영화를 보는 듯.
사실, 지금의 이 세계도, 알고 보면 아이들 장난 같은 단순한, (너무나 단순해서 특허조차 필요하지 않은) 발견 된 지 아마 천년은 된, 오랜 화학반응식 하나만 가지고 밥벌이 하는 사람들이 생각 이상으로 무척, 무척 많이 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보면 웃음이 나올 만큼이다.
알고 보면, 빈틈없이 살벌하고 잔혹해 보이는 세상도, 무척 허술한 철조망에 의지한 채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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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곤
수소
아연
철
칼륨
니켈
납
수은
인
금
세륨
크롬
황
티타늄
비소
질소
주석
우라늄
은
바나듐
탄소
p41
가령 ‘아산화질소‘를 만들어볼 수도 있었는데, 이것은 세스티니나 푸나로가쓴 책에는 ’웃음가스‘라는 그다지 적절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은 용어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걸 마시면 실제로 웃게 된다는 말인가?
이산화질소는 질산암모늄을 조심스럽게 가열하면 얻을 수 있다.
p47
사냥을 떠나는 사람은 총, 좀 더 쉽게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숲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기회를 잡으면 좇아라. 때가 닥치면, 이런 저런 점을 치는 것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론은 중요하지 않다. 길을 가면서 배울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쓸모없고, 중요한 것은 직접 맞붙는 것이다. 쓸모 있는 자가 살아남는다. 허약한 눈이나 팔, 코를 가진 자는 되돌아서서 직업을 바꿔라.
p50
첫날 나는 운 좋게도 황산아연을 제조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초적인 화학량을 계산하고, 아연입자들을 미리 희석시켜준 황산으로 산화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에 농축시키고 결정화해서 펌프로 건조시킨 후 씻어서 다시 결정화하면 끝이다.
p59
철과 구리처럼 소박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숨기지 못하는 원소들이 있는가 하면, 비스무트나 카드늄처럼 잘 속이고 겉잡을 수 없는 원소들도 있었다.
p75
그 고기 맛이란 강인함과 자유의 맛, 실수도 할 수 있는 자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의 맛이다.
오늘에 와서 한 인간을 언어로 옷을 입혀 인쇄된 종이 위에서 다시 살게 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p89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액체에서(보이지 않는) 증기로, 중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 위로 아래로 두 겹의 여행을 하는 사이 마침내 순수한 것에 도달한다. 이것은 모호하면서도 매혹적인 조건이다. 화학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훌쩍 넘어 먼 곳에 아르는 것이다. 결국 증류를 하면 수 백년 동안 신성시 되어온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거의 종교적인 행동으로 불완전한 물질에서 정수(精髓)를 ‘우시아’를, 영혼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혼을 북돋우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알코올을 얻게 되는 일이다.
p91
비참한 상황에 있으면서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조용히 책상에 앉아 고통스러웠던 일을 회상하는 것도 아주 깊은 만족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3
광산의 바위에는 정말 니켈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양이 너무나 적었다. 우리의 분석결과로는 평균 0.2%밖에 되지 않았다. 지구반대쪽의 캐나다와 뉴칼레도니아의 동료들과 경쟁자들이 얻어내는 광물에 비하면 웃음거리밖에 더ㅣ지 않았다. 하지만 원료를 농축할 수는 없을까? 중위의 지도를 받으며 나는 모든 가능성을 다 시험해 보았다. 磁力選鑛, 浮游選鑛, 水力分級도 해보았고 체로도 걸러보았고, 重液을 써서 선별도 해 보았고, 요동테이블을 사용해보기도 했다. 소용이 없었다. 농축이 되지 않았다. 선별된 것을 다 조사해보아도 니켈 함량은 고집스럽게도 처음과 똑 같았다. 자연이 우리를 돕지 않은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니켈은 2가철을 데리고 다니고 대리인처럼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나 아주 작은 동생처럼 그것을 따라 다닌다는 것을 말이다. 니켈 0.2%, 철8%로 말이다.
p.115
금속 상태의 니켈은 철과 마찬가지로 자석에 끌린다. 따라서 그 가설에 따르면 잔지 작은 자석만으로도 니켈을 그 나머지에서 홀로 또는 철과 함께 쉽게 분리시킬 수 있다. 하지만 처리가 끝난 뒤에 그 광물가루 현탁액을 휘저어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미량의 철만 건져 올렸을 뿐이다. 명백하고도 슬픈 사실은 그런 조건에서 수소는 그 어느 것도 환원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철과 함께 있는 니켈은 규산염과 물과 결합하여 사문석의 구조 속에 견고하게 틀어박혀 있으면서 자신의 상태에 (말하자면) 만족하여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분명했다.
p124
우리는 미래에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살이 물렁물렁해지고 핏기가 없어지고, 배가 아프고 머리카락과 이가 빠지고, 잇몸이 잿빛을 띠게 되면, 혼자 있는 것이 더 나으니까.
p131
청동파이프는 만들기가 어렵고 마실 물을 위해 쓸 경우 복통을 일으키지만, 납 파이프는 영구적이고 아주 쉽게 이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경건한 표정을 지으면서, 죽은 사람을 위해 관의 표면에 얇은 납판을 입히면 시신에 벌레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물기가 빠져 시신이 날씬해진다고, 그러면 영혼도 흩어지지 않게 되는 큰 장점이 있다고도 넌지시 해보았다.... 납은 죽음을 가져다 주고, 그 무거운 성질은 추락하여 함인데 추락은 바로 죽은 자가 하는 것이고, 그 색깔도 핏기 없는 죽음의 색이며, 이 모든 것은 납이 행성들 중에서 가장 느린 죽음의 행성인 ‘투이스토’의 금속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p134
아직 물렁물렁한 판유리 위에다 녹인 납을 부으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아주 빛나는 거울을 얻을 수 있는데, 그 거울은 흠집도 생기지 않고 수십년 동안 쓸 수 있다는 것 말이다.
p174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사서는, 목에 걸린 쇠사슬과 배고픔 때문에 사나워지기로 결심한 불쌍한 개들 중의 하나인 경비견처럼 도서관을 지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글북”에서 왕의 보물을 지키는, 수백 년 동안 어둠 속에서만 살아 색깔이 하얗게 변한, 이빨 빠진 늙은 코브라 같았다.
p207
나는 실험실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지방산 수백 그램을 훔쳤다. 그것은 방벽 너머에 있는 내 동료 몇 명이 파라핀을 산화시켜 얻은 것이었다. 나는 그 지방산 중 반을 먹었다. 정말로 허기가 가시긴 했지만 그 맛이 어찌나 고약하던지 나머지 반은 포기해야만 했다. 전기난로에 위생 솜을 눌러 튀김을 해보기도 했다. 약간 설탕 탄 맛이 나기는 했지만 너무 끔찍해 보여서 시판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 나는 또 글리세린이 지방 분리 제품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신진대사에 관여할 것이고 칼로리를 높일 수 있으리라는 단순한 추론에 근거해서 글리세린을 먹고 소화시켜보려고 애썼다. 어쩌면 칼로리를 높여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불쾌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p267
금속에는 우호적인 것과 적대적인 것이 있다. 주석은 우호적이다. 몇 달 전부터 에밀리오와 내가 주석을 염화주석으로 바꾸어 그것을 거울 제작자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심오한 다른 이유들이 있다. 주석은 철과 결합되어 철을 부드러운 주석 판으로 바꿔놓을 뿐 아니라 유해한 철의 성질을 제거해 준다. 페니키아인들이 그것을 팔았고 아직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먼 나라에서 - 말라카 해협이다- 그 것을 생산해 정제하고 배에 싣고 있다. 또 구리 합금이 되어 최고로 존중을 받고 그 영속성과 안정성으로 잘 알려진 청동을 만든다. 그리고 유기화합물, 그러니까 마치 우리처럼 낮은 온도에서 용해된다. ... 좀더 쉽게 염산과 반응시키기 위해 주석을 알갱이로 만들어야 했다.
p273
에밀리오가 자유로운 직업인으로 누리는 모험과 긍지를 자랑하며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호숫가의 그 공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영원히, 불량품 니스를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모한 배짱으로 사표를 냈고 건방져 보이는 사행시로 사직서를 써서 동료들과 상사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내가 어떤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수를 할 수 있는 자격조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엄격해진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 열매를 누리고 싶은 사람은 너무 오래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도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되었다. 매달 말 우리는 계산을 했는데, 염화주석만으로 사람이 먹고 살 수 없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다. 아니 적어도 갓 결혼했고 뒤에 든든한 아버지가 없는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p340
작가들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사람들이 애초에 생각하듯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두 부류란 바로 당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레비는 귀를 기울이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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