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황금광시대, 전봉관

eyetalker 2008. 5. 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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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狂時代 전봉관/살림출판사/2005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전봉관의 저작.

 

Gold는 지난 금요일 런던가격 종가기준 온스당 약$855.45였는데  작년 이맘때 약 $650불 하던 것이 지난 3월에는 $1000을 넘는 광란을 보이다 지금은 약간 가라앉은 형국이긴 하다.  1온스가 28.34그램이므로,  지금 Gold1그램이 $30이고 이것은, 1Kg짜리 (= 1000 그램) 금괴는 $30,000,즉 요새 환율로 딱 3000만원이라는 것이다.  그 비싸다는 구리 1Kg가 겨우(?) 8,000원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정말 금값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금광개발 붐이 불어 평안도, 함경도 오지에서 금광업을 벌였던 최창학이 당대의 금광왕이 되고, 나중에 조선일보를 사들인 방 응모 역시 금광의 개발로 번 돈을 비교적 선용하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산금열의 이면에는 전쟁군비에 필요한 금이 필요했던 조선총독부와 일제의 적극적 산금장려정책이 있었다는 것이 요지.

 

당시의 금광열풍, 광업권 투기에 대한 이야기는 달리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몇몇 선각(?)의 자본주의적 투신에 일정 감동을 받기도 한다.

 

불과 한 두 달 전에 이 땅의 한 젊은 사업가가 한국의 잔존 금광, 광산을 둘러보고 나서 느낀 소감을 듣는 자리에 우연히 참석한 적이 있다만, 아직도 정선 자락에는 금광, 동광, 아연광을 하고 있는 노인무리들이 웅크리고 있더라는 말을 듣고 불현듯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10년쯤, 여름, 동해에 살던 지인의 갑작스런 부고를 받고, 한 방중의 정선 산 고개를 자동차로 넘고 난 뒤론 깜박 잊고 살았던 그 산골 구석에 아직도 광을 캐는 노인들이라

 

P25 … 아이구  강원도 정선 산골 말 두 마세요

 

P31 금광 열풍이 엄습했을 때, 제일 먼저 금광으로 달려간 소설가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의 결성에 산파역을 맡았던 팔봉 김기진 이었다.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경영난에 빠진 조선일보가 1933 1월 금광 재벌 방 응모에게 인수되자 금전꾼밑에서는 기자 노릇을 할 수 없다며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평남 안주에 가서 금광을 하려는 계획이었다.

 

P40 이름만 들어도 황금광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노다지금광들은 한반도 전역에 산재해 있었다. 백만장자만 10여명 탄생시켜 동방의 엘도라도라 칭송되던 운산 금광, 노름판과 금전판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광부 최창학을 하루아침에 사교계의 저명인사로 만들어준 삼성금광, 변방의 오지 정주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빚으로 운영하며 언론인의 꿈을 키우던 촌부 방응모에게 조선일보를 안겨준 교동금광등은 국경에 인접한 평안도에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양질의 금광인 수안금광, 송계금광은 황해도에 있었고, 강원도에는 평창금광, 여선금광, 통천금광, 홍천금광 등이 있었다.

 

 

P41 …1933년 한 해 동안 525개소의 광산이 개발되었는데 그 중 금광이 3222개소에 달한다는 것과

 

P44 1933년 한반도에서 생산된 금의 양은 약 31톤이었다. 식민지에서 엄청난 양의 금이 생산된 그 해 일본은 남아공, 미국, 소련, 호주와 함께 세계5대 산금국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P58 1930년대의 黃金狂들도 금을 캐서 번돈은 대부분 금을 캐다 날렸다.

 

P257 황금의 매력은 모든 물가가 폭락하는 가운데 그것만큼은 유독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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