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사랑보다 낯선

eyetalker 2005. 11. 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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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낯선 , 박상우 소설집

남자 소설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모험을 한 듯 하다.
그래도, 삼십세 비망록, 마천야록 같은 단편들은 그럭저럭 읽을 만했다.

소설집의 제목을 단 단편 ‘사랑보다 낯선’에 등장하는 화자와 여주인공 ‘임채령’은 대학에 기생하는 먹물의 신분. 근데,이야기의 내용과 그 신분의 이미지가 영 무관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무실의 직원이래도 좋고, 중고교의 선생님이래도 좋고. 소설이니까, 등장인물들은 뭔가 그럴듯한 신분이 있어야하는 걸까? 내용은 영 별무. 채령이 토요일 오후4시에 화자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 어딘가로의 대동을 요구한다. 이들은 태백산 어딘가로 접어들고, 착지는 채령의 자살한 전남편이 누워있는 영안실이다. 야간에 채령은 화자를 갑자기 성적으로 공격하고.. 도중에.. 미치겠다고 몇 번 뇌까린다. (여기가 클라이맥스인가?) 소설의 그것과 채령의 그것이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할 틈조차 없도록 만드는 그침 없는, 등장인물, 상황의 작위적 창조는 이리도 지난한 것이다. 근 20여년을 엉덩이에 피가 나도록 소설만 파고든 작가라 할지라도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면 실격이다.

그래서 좋은 작가는 유전적으로 천재일 가능성이 높다. 재능 없는 자여 부디 이 길로는 들어서지 말기를.(이 작가에 대한 말은 아니다.)

어제 모처럼 일찍 들어가야 했던 덕분에, 엠마 핏제럴드의 페이퍼 문을 틀어 놓고, 베란다에 놓아든 안락의자 끄트머리에 엉거주춤 비틀어 앉아, 뜨거운 페퍼민트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오른 손가락 사이엔 연필을 끼운 채, 맨발은 베란다의 창틀사이에 끼워 고정시킨 자세로, (요가에 준하는 상당히 복잡한 포-즈) 잠시 수행했다.

2004.6.30
ㅈㅣ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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