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eyetalker 2006. 3. 2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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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xus and the Olive Tree

토머스 L 프리드만.


2000년에 개정 출판된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읽다.

사실 “세계화”문제는 한국인들에게는 김영상 정부이래의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세계를 이해할 때 가장 근사하게 썰을 풀어갈 수 있는 논리임에 틀림없다.


렉서스는 누구나 아다시피 강남의 귀부인께서 가장 애호하는 도요다 자동차의 중대형 쎄단이고 올리브나무는 예수의 탄생지 중동의 소나무같은 나무다. 양단어가 대변하는 바, 전자는 첨단과 물질을 말하는 자본주의의 쿨(냉정과 멋짐)과 사람의 뿌리,고향, 예전의 그때를 이야기한다. 요는 인간 생활상의 현실과 이상의 관계쯤이다.


목차를 보자

서장 세계는 열 살

재1부 시스템 보기

제1장 시스템

제2장 정보의 중개

제3장 렉서스와 올리브

제4장 무너지 과거의 장벽

제5장 정보면역결핍증

제6장 황금구속복

제7장 전자투자가 집단


제2부 시스템에 접속하기

제8장 DOS자본버전 6.0

제9장 글로벌루션

제10장 당신은 창출형인가 적응형인가

제11장 성공하는 국가들의 아홉가지 습관

제12장 맥도날드 햄버거와 갈등예방이론

제13장 지속가능한 세계화

제14장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제3부 세계화 시스템에 대한 반발

제15장 시스템에 대한 반격

제16장 성원의 물결


제4부 세계화체제와 미국

제17장 합리적 도취

제18장 혁명은 미국으로부터

제19장 세계화가 무너질 수 있는 여섯가지 이유

제20장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이 책이 1999년에 초판이 나왔으므로 당시 세상의 화두는 1997년12월 태국통화 바트의 급속 절하로 인하여 촉발된 아시아 금융통화위기의 촉발과 전개, IMF의 개입, 러시아, 남미로의 확산, 구미제국의 긴급자금지원과 그 정치적, 경제적 반응이었다.


저자는 이를 1920년대의 대공황 전후의 모습을 비교, 유사성 점검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반동 논리를 예화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단, 그 확산의 신속성이 예전과는 현격히 다르다는 점. 따라서 이제 전세계인민은 동일한 충격을 동일한 스피드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1920년대 전성기의 대영제국이 아시아 아프리카,남미의 신흥시장에 한도이상의 엄청난 자본투하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경우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 1920-30년대를 배경으로하는  영화나 소설속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철도채권, 라트비아 국채, 수에즈 운하개발채권등등.  당시에도 영국, 유럽의 신흥부르조아지, 시민계급들은 이런 채권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패가 망신하기도 하고, 자살하기도 햇던 것은 지난 1997,8의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과 많이 유사하다.  당시 많은 한국의 중소자본가들은 미친듯이 설비확장에 투자하고, 부동산에 투자하다 결국은 덫에 걸려들지 않았던가.


1부의 서두는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계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상징하는 바, 이세상의 모든 (경제적,정치적) 현상은 어떤 형태로든 상호연관되어있다는 것. 눈앞의 현상뒤에 무수히 겹쳐진 이면들의 해석능력은 그래서 더욱 중요해진다. 맞든 틀리든 자신만의 시각으로 공격적이든 수세적인든 해석할 의지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해진다. 그 첨병은 헤지펀드 매니저라고 규정한 것은 어쩌면 사실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최종수단, 돈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더 큰 부라는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어차피 비명횡사 이전이면 길고 길어야 100년 인생이니 100년이후의 일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한들 이들에게는 오불관언에 마이동풍일 수밖에 없다. 첨단은 그래서 허무와 연결된다. 허무는 비상식, 몰인간이다. 따라서 돈은 몰인간이다는 등식이 성립할 수도 있다. 좋은 뜻이라면, 저자는 세계화를 이해하고자 하면 자신이 바로 지적방랑자여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통할 수 있을게다. 


세계화는 경쟁에 싸워 이기든가 아니면 죽든가라고 단언해도 좋다. 그래서 정치는 (정부는) 필연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런 탈락자들 위한 소셜 네트워크를 구상할 수 밖에 없다. 현실정치다. 이것이 논지 전개의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화는 기술, 금융, 정보의 3대 민주화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 원동력은 개개인의 기본욕구 ‘더 나은 삶‘이다. 원초적 본능이다. 더 나은 계집(남자라면), 더 나은 남자(여자의 경우). 더 나은 수면? 더 나은 환경에서의 배설욕구가 충족 되기를 바라는 장삼이사의 욕구가 세계화를 추동하는 힘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이 거의 무한히 허여된 나라는 미국이라고 저자는 누누이 주장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실험이 실패로 종결된 이상 그의 주장에는 거침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시시하기도하다. 어차피 너머지는 각론에 그치는 부차적 중요성 뿐.


우리는 흐름속을 산다. 인식하지 못하지만 매우 도도하여 자칫하면 알면서 모르면서 휩쓸려나가 깊은 수면속으로, 그리하여 존재의 끝이라는 허무속으로. 고통의 종결은 결국 존재의 종결에서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산동성 칭타오 들려오는 AM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차를 운전하는 경험은 사뭇 색다르다. 인천은 그 만큼 건너편 대륙과 닿아있다. 정치적 정당성을 기치로 정신이 지배하는 물질의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대륙은 일당독재, 중앙집중경제의 대규모적인 살육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자본주의라는 맹수들의 땅으로 무작정 달려들어가고있다.

세계화의 여파는 이제 제방없는 대륙으로 밀려들고, 우리가 지난 50년세상을 살면서 넘기고 지나온 자본주의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게다. 몇천만이 아닌 수십억의 인민들에게 말이다.

 

대륙이나 반도나 섬나라 사람이나 누구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하루, 한달, 일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한끼밥을 위한, 생존을 위한 거친 투쟁을 이렇게 매일 매일 시작한다.


고로 세계화고 무한의 경쟁이다.

 

생각하는 자는 살고 돌대가리들은 언젠가 퇴락하다 죽고만다.

차라리 그대의 삶이,인생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ㅈ ㅣ ㄴ

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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