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eyetalker 2006. 3. 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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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복거일 2005년1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주창하는 논지는 피할 수 없이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한다. 다 아는 듯 하지만 사실은 반드시 다 아는 것만은 아닌 것이 이념체제이다. 물이나 공기처럼 그 아니면 살 수 없는 체제속에 살면서 자신의 체제를 당연한 듯 느끼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최소한 배운 사람들은 말이다. 어제 티븨에서 1945 서울 이라는 해방기의 전후사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것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념 자체가 살기등등한 총이나 죽창처럼 분명한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수로 배를 가르는 일본식 자살을 감행하는 한 조선인의 모습에서 드러내는 것처럼 인간사와 개인의 행위양식에서 피처럼 묻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 피를 보면서 그 체제의 동력을 역으로 짚어 가야만 그 본질과 진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체제를 하나의 정치한 이념으로서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은 많은 선각과 명철한 몇몇에 의해 부단히 진행되어 온 것이다.  

 

아래는 이 책의 부분 부분별 내용중 몇몇 의미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이글을 쓰는 나의 저작이 아니니 혼돈을 피하여야 할 것.

 

 


서문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에 대한 우려로 그 이념에 대한 변호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효율적이고, 따라서 사회적 번영, 개인적 자유를 동시에 가능하게하는 자연스럽고 정의로운 체제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확산시키는 사람이 드문 것을 우려한다는 것.


자본주의에 관한 논의에서 핵심은 “ 인간의 천성에 관한 이론”이라고 규정한 저자는 진회심리학의 관점을 다량 차용, 진화해온 인간의 품성에 따르면 인간은 개인적 탐욕과 이기주의를 천성화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억압은, 곧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로 되고 따라서 부자연스러우며 많은 반동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견,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천성에 관한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치함=진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거역하기도 또한 어렵다.


01. 자본주의는 효율적이다


반대자들의 논리, 즉, “자본주의는 정의롭지 못하다“에 대한 반론이다. 자본주의가 그 과정과 결과를 보면 정의롭게 작동한다는 사실은 몇 단계의 추론을 거쳐야 검증되지만 평등에 대한 주장은 그와 달리 직관적으로 뚜렷하므로 평등을 우선하는 자들의 목청이 높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오도된 주장이 넘치고 있다


02.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움


생산요소를 사회가 소유하는, 강제력을 필수로 동원해야 기능하는, 사회주의등의 체제에 비추어 자본주의는 자본자산을 포함한 재산이 대부분 개인소유라는 점. 소유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누구도 자신의 힘, 시간을 들여 재산의 형성에 착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면 자본주의가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본주의는 Default State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류의 기본적, 보편적 선택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러나 순수한 자본주의는 실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경제체제에도 반드시 사회주의적 특질을 가질 수 밖에는 없다.


03. 재산의 본질


좀 극단적이다.

“노동소득에 대한 세금은 강제노동과 비등하다.” Nozick. 1974

"Taxation fo earnings from labour is on a par with forced labour."


재산은 소유하는 것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물질적으로 점유하거나 사용하는 것 뿐 아니라 특정한 권리를 지녔음을 뜻한다. 그런 권리들이 재산의 핵심이다. 궁극적으로 법에 의해 규정되는 권리이므로 재산은 본질적으로 법적 개념이며 법체계내에서만 존재한다.

 

재산은 우리가 생명체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재산의 소유관계를 밝히는 재산권은 사람들의 삶에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작용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실질적으로 뜻이 겹친다. 한 사람의 몸 자체가 그의 재산의 핵심이다. 재산권은 인권에 필수적, 핵심적이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며 따라서 인권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 의미는 보다 분명해진다.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을 밝히려면 재산권이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것을 밝혀야한다.


04. 재산권의 정의로움


재산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재산의 형성에 대한 공헌에 바탕을 둔다.


노동가치설(labour theory of value) = 재산의 가치가 본질적으로 노동에서 나온다는 가설이다.

-> 아담 스미스의 노동가치설.은 3가지 개념으로 쓰였다.

a. 노동량 가치설(labour quantity theory of value.)

b. 노동비효용설(labout didutility theory.)

c. 생산비설(Cost of production theory.)


David Ricardo는 “노동량가치설”을 수용

-> Marx및 사회주의 주류는 “노동량 가치설”을 경제이론의 근본으로 삼았다.

 

“.... 그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사람의 노동력이 쓰였고, 그것들 속에 사람의 노동이 축적되었다. 그것들 모두에 공통된 사회적 물질의 결정으로서 그것은 가치다, 상품가치다.”

-> 재산은 그것의 생산에 기여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한다고 사회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몫은 그가 생산하는 ‘가치‘가 아니라 그가 든 ’가치‘ 즉, 임금 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하며 “따라서 재산은 그것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옳다는 주장은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론에 다름아니다.


05. 재산권과 도덕심


짐승들이 보이는 영역에 보이는 집착은 재산권의 가장 원초적 모습이다.

 

영역성은 인류문화의 보편적 특질임. 영역적 본능은 어떤 필수자원이 “밀도의존요소”로 작용할 때 진화과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들과 자신들의 사회적 집단을 위해서 개인적 자원을 지키려는 성향을 유기적으로 갖춘 개체들은 다음세대에 유전자들을 더 많이 확산한다.


재산권에 관련된 태도가 정의감의 원초적 형태이다. 정의감은 선험적 존재가 아니다. 그 것은 인간의 생물적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도덕 감정이 자리잡은 뇌의 한 부분이 있다. 그곳이 파손되면 그 인간은 갑자기 비도덕적으로 행위 한다. 정의감은 도덕적 감정의 핵심이다. 어린 아이의 소유욕구 본능을 보라.


06. 상호적 이타주의와 도덕적 감정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은 사회생물학에서 출발한 것으로 진화론을 근본적 이론으로 삼은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 생명의 조직된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지닌 단 한 가지 쓸모있는 이론”


진화심리학자들은 사회의 근본적 구성원리가 ‘ 상호적 이타주의’리고 본다. 그것을 낳은 것은 개체들의 이기주의. 즉 자신의 친교관계를 최대화하고 자신의 적대적 관계를 최소화하는 개인은 진화적 이점을 지닐 터이고 (자연)선택은 개인적 관계들의 최적화를 북돋는 특질들을 선호할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분개의 불길이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 법인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몸으로 느끼는 확신. 사람의 정의감의 핵심인 정당한 상벌이라는 직관적으로 분명한 개념은 진화의 부산물이며 단순한 유전자적 술수이다.


07. 분배적 정의

 

 여러 증거들은 우리가 발전되고 섬세한 정의감은 재산권과 관련된 원초적 정의감이 진화한 것임을 보여준다.


(역사적 원칙)

재산의 분배가 정의로운가 그렇지 못한가는 그것이 나오게 된 과정에 달린 것


(최종결과 원칙)

정의로운 분배에 관한 어떤 구조적 원칙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하며 판단에 필요한 것은 현재의 분배상태에 관한 정보들 뿐이며 그런 분배가 나오게 된 과정에 대한 정보는 관련없다고 보는 것.


최종결과 원칙의 추종자들= 정의롭다고 여기는 구조적 원칙중 가장 늘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평등, 측, 평등한 분배가 가장 정의롭다고 여긴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무척 정의하기 어렵고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평등주의의 기준은 다양하다.

1) 불편성(impartiality)

2) 모든 이에게 평등한 배분(equal shares to all.)

3) 평등한 자들에게 평등한 배분(equal shares to equals.)

4) 비례적 평등( proportional equality)

5) 관련있는 차이에 상응하는 불평등한 배분

(unequal shares corresponding to relevant differences.)

6) 각자의 자격에 따른 배분(to each according to his desert.)


08. 정의에 대한 평등주의의 견해


받아들일 수 없는 불평등과 큰 비효율의 극단을 피하기 위해 정책은 조심스럽게 설계되어야한다.


[노직의 견해]

분배적 정의의 구조화된 원칙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들을 마음대로 쓰는 것을 포함한다. 어떤 개인의 노동의 결과를 몰수하는 것은 그에게서 시간을 몰수하고.... 만일 사람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또는 보상이 없는 일을 강요한다면 당신의 결정과 상관없이 당신이 무엇을 하고 당신의 일이 무슨 목적에 봉사하는 지를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으로부터 결정권을 앗아가는 과정은 그들을 당신의 부분적 소유자로 만든다. 그것은 당신에 대한 재산권을 그들에게 준다는 것이다. 짐승이나 무생물에 대해 그러한 부분적 통제와 결정권한을 정당하게 지니는 것이 그것에 대한 재산권을 지니는 것과 똑 같이.



09. 자본주의의 정의로움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자연스럽고 정의로운 체제이므로 평등에 관한 논의는 본질적 문제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정의로운 체제에서 나오는 이차적 문제들을 대처하는 일을 둘러싼 논의가 된다.


자본주의의 결과 , 보통선거권의 확산 강력한 평등이 실현되는 것이다.


10. 재산권의 중요성

자유에 대한 근본적 위협은 강제력이다. 자유의 본질은 권력의 집중을 없애고 어뵤앨 수 없는 권력은 분산과 배분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획득에 있다. 재산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정치권력과 재산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재산권의 법적 보장은 약자들을 위한 장치였다. 재산권은 약자들이 쟁취해온 권리이다.

11. 기구가설


보다 나은 기구들 보다 안정된 재산권 그리고 덜 왜곡적인 정책을 가진 나라는 물질적, 인적자본에 보다 많이 투자한다. 이들 생산요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보다 높은 소득수준을 달성한다. 기구가 중요하다는것은 자명하다. 남북한, 동서독의 예를 보라.


12. 재산소유에서의 불의의 시정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자본주의의 이상형의 그것은 모든 재산의 획득은 정당하게 이루어진다고 가정한 것.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그러나, 역사의 칠판에서 불의를 깨끗이 지우는 일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하나?

여전히 자본주의체제에서 다른 체제들에 비해 그 불의의 정도는 덜하다.


1) 불의한 재산획득의 주요원인은 정부권력의 오용과 부패

2) 재산권의 계약을 통한 자유로운 이전이 가능하다

3) 재산점유에서 불의와 기회의 불평등을 시정하는 일은 엄청난 자원이 드는 일이다. 따라서 보다 부유한 사회에서 정의와 평등을 위한 노력의 성과가 커진다


13. 자본주위 대한 내재적 위협


-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의 근원


자본주의 문명은 무엇보다 합리적이다. 그것은 반영웅주의적이고 반신비주의적이다. 성공한 자본가는 모든 현상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보다 나은 길을 찾아내도록 여건에 의해 강요된다. 불행히도 현존의 사회적 풍습과 기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꺼이 합리적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여는 태도를 불러오지는 않는 법이다.


- 망의 역할과 특질

전달자들은 허브를 이루고 그들의 태도는 이면과 생각의 전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에 적대적 세력이 집권하는 경우 그들이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적 사상을 확신시킨다.


- 직관의 한계

복제가 쉽고 전파력이 큰 믿음은 대개 사람들의 직관에 맞는 것이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직관을 통해 세상을 살피고 판별한다. 직관으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는 사람들의 뇌에서 복제가 어렵고 자연히 전파력이 약하다. 불행히도 직관은 세상의 움직임을 이해할 힘이 없다. 그래서 흔히 그르다. 사람의 뇌는 일상적 현상에 대처하도록 진화한 것이지 세상의 움직임을 총체적으로 깊이 파악하기 위해 나온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1)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의 대립

2) 노동조합에 관한 생각.

‘약자인 노동자들이 뭉쳐 강한 자본가에 대항해야한다’는 주장은 사람의 지관에는 맞는말이다. 그러나 노조가 자체적으로 노동자 전체의 복지를 늘릴 수 없고 노동조합은 약한 노조에 속하거나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로부터 보다 강한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로 소득을 이전하는 효과만 지녔다. 노동자 전체의 복지를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시장의 가격기구라는 사실은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기적 개인들의 사회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개인의 활동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직관에 맞고 그래서 동의하는 개인은 많으나 개인들의 이익추구라는 미시적 계산에서 사회적 조화라는 거시적 결과가 나오는 과정은 설명이 어렵고 본질적로 반직관적이다.


- 부러움의 정치학


시장경제에서 모든 경제주체가 자유롭게 경쟁하고 사회는 그런 경쟁을 통하여 끊임없이 보다나은 길을 모색한다. 하이에크의 지적대로 경쟁은 ‘발견’절차이다. 시장경제의 높은 효율은 바로 그러한 발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경쟁에서 처진 사람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설치한다. 따라서 사회전체는 최대한의 복지를 누리며 불행하거나 가난한 사람들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얻는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실은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미워한다. 그런 미움은 사람의 마음이 시장경제를 좋아하지 않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긴다.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흔히 이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겨지지만 시장에 적대적인 이념이  추종자들에게 매력적이고 자명하게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요인이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처지를 늘 타인들과 비교하며 자연히 부러움으로 가득찼다. 사람들의 그러한 행태는 시장경제에 호의적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처지에 대한 판단을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내린다. 당연히 사회의 최상층에 자립잡은 사름을 빼면 모두가 자신의 소득이 상재적으로 작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감이 시장경제에 대한 반감으로 발전한다. 부러움의 정치는 결국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교육의 하향평준화

투기의 경제적 기능을 무시한 징벌적 규제와 과세


- 내재적 위협에 대한 방책


공산주의의 몰락이후 자본주의는 자신속에서 위협을 키운다. 내재적 위협에 대한 방책은 반자본주의적 믿음에 맞설 믿음을 평균적인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유포되어야한다.


14. 대안적 체제들


고대문명들이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훨씬 높이는 종교를 낳았다는 사실.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우리마음속에 내재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높이 여긴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는 물질만을 숭상하는 체제로 보인다.


몰락한 공산체제 대신, 자본주의 체제 대신, 정신적 가치에 바탕을 둔 제3의 길을 열심히 모색한다.


그러나 정신적 가치를 물질적가치보다 앞세운 대안적 사회가운데 실제로 세워진 것은 드물었고 제대로 기능해소 오래 살아남은 것은 없다.


대안적 사회가 실패하는 까닭;


반자본주의 주장속의 모순:

‘추가적 소비가 그렇게도 중요하지 않다면 소득과 소비에서의 평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15. 경쟁의 본질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경쟁을 본질적 원리로 삼는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까닭이  그것이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치열한 경쟁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이다. 자연이 바로 경쟁에, 실제로는 전혀 사정없는 싸움에 바탕을 둔 체제이기 때문이다.


애드워드 윌슨

“ 자연은 싸움터입니다. 잘못 생각하지 마시오.”

Nature is a battlefield, make no mistake.

모든 생명체는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싸움터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우리는 행복한 동물이 아니고 효과적인 동물이 되도록 만들어 졌다.

We are built to be effective animals, not happy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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