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소설속의 철학. 김영민, 이왕주, 문학과 지성사

eyetalker 2007. 3. 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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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의 철학.

김영민, 이왕주. 문학과 지성사. 1997년3월


95년봄부터 96년가을사이 부산일보에 연재한 기고문집. 소설속에 녹아있는 철학의 시각을 곱씹어보고 있다.  사뭇 진지하고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


1부는 한국문학작품, 2부는 타국 작품들이다.


흥미있는 구절만 모아본다. 그 전후의 맥락은 책을 구해 읽어보아야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운수좋은 날의 운수]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p21

“소인은 좋은 것을 즐기고 군자는 좋은 것을 경계한다.”-공자-

“삶의 목표는 적절한 결핍에 욕심없이 머무르는 것.”-스토아 학파-

“당신도 최상의 날을 경계하고 운수좋은 날을 조심하라.”

 

[백치의 축구골대]

-계용묵의 “백치아다다”-

p28.


“삶을 ‘문제해결의 과정’이라고 정의한 사람은 죤 듀이였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풀이의 결과는 푸는 과정과 상호침투하며 결코 서로 단순히 분리되지 않는다.“


[장미와 주판의 싸움]

-김유정의 ‘봄봄‘-


어린왕자에서 여우의 부탁은 이렇다. 아무 때나 불쑥나타나는 어린왕자에게.


“언제나 같은 시간에 찾아와 주었으면 해.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거야..“


“그렇다. 기다림으로 황홀해지기 위해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기위해,

우리에게는 특별한 날의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 때나 나이를 먹고 어느때나 곡식이 익어간다면 기다림과 만남만이 줄 수 있는 이 황홀한 행복을 어디에서 찾겟는가.“


[살며시 도시의 그늘에서 날개를 펴며]

-이상의 “날개”


“날개란 날개는 모두 꺽인후, 그 모멸을 스스로 모멸함으로써만 그 모멸로부터 간신히 벗어났다고 믿는 것이 도시인들의 생존방식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  - 이상의 날개에서-



[혀끝의 삶, 손끝의 사랑]

-황순원의 ‘소나기’


“느끼려는 사람은 마음을 못내 내려놓지 못하는 법”


소크라테스, “느끼지 않는 삶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 느끼려는 긴장없이 스치는 시간들을 “삶”이라는 고매한 언어로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이 삶이라면 개도 살아가고 소도 살아간다.



[독로, 지혜와 성숙의 텃밭]

-박완서 ‘마른 꽃’


모처럼 ‘靑沙浦’이야기다.


저 바다 멀리에서 조용한 어두움이 한발 두발 밀려올 때의 ‘청사포‘해변. 찻집에 마주 앉은 그 여자는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아이들이 다 집으로 불려 들어가고 저 혼자 남는 그 시간‘이 그립다고 했는데..


“카뮈는 삶이 살 만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급선무 라고했다. 키케로는 철학은 죽음을 대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로 묘사한 것도 철학도 들 사이에서는 상식이 되어있다. 철학적 지혜와 성숙은 결국 죽음을 마주보는 시선과 자세 속에서 구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p55


“늙은 여자의 메타포인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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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꽃’은 어감에서처럼 작중에서도 자조의 뜻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나로서는 ‘삶과 죽음을 범람하는 성숙과 지혜의 씨앗을 감춘 ‘꽃으로 들리니, 내 생상이 과람한 탓인가, 아니면 당신들의 관찰이 야박한가.“

p57



[안개속의 실존]

-김승옥의 ‘무진기행’


그저 있는 즉자적 당신과 의식의 흐름을 느끼는 대자적 당신의

대립. “대자의 특징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시시각각 고민하는 데 있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고민하는 대자를 ‘실존’이라고 불렀다. 실존이란 결국 자유롭게 자신의 존재,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인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p 76


위장된 실존으로의 퇴각= 집요한 자기기만. 무진기행의 주인공은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사르트르는 ‘구토’끼마저 느꼈다.



[동경, 그 흐릿한 거울에 비친 진리]

- 오정희 ‘동경’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이 책의 결론에 따르면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것과 살아있는 동안 근심에 허덕여야 한다는 것이다. “

p102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근심의 존재요. 그 길 끝에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비극적 존재다. 하지만 그 존재는 흔히 평균화된 익명의 존재로 자신을 위장함으로써 이 삶의 비극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이 마냥 희희낙락하며 살아가는 것은 마치 술꾼들이 술집에 문닫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잊고서 술을 퍼마셔대며 떠드는 것과 같다..... 석 잔의 술은 비우도록하자. 한 잔은 우리의 근심을 위해, 또 한 잔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사랑을 위해... 결국은 다 한줌 흙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사랑은 이 비참을 버티어내는 데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일 것이므로 “

p 105


[만남과 스침

-최윤, ‘ 하나코는 없다


“마르틴 부버는 두 가지 종류의 만남에 대하여 말하였다.

하나는 ‘나’와 ‘너’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그것’의 만남이다. 여기서 너 또는 그것은 각각 인칭, 비인칭을 뜻하는 대명사가 아니다. 친구나 연인이 단지 ‘그 것’일 수 있는 가 하면 나무나 풀도 ‘너’일 수 있다.“

p116



[존재와 글자]

-나다니엘 호손 ‘주홍글씨’


“글자와 존재사이의 역동적인 긴장관계를 감동적으로 나타낸 작품. 존재가 글자에 의해서, 주체가 언어에 의해, 그리고 뜻이 기호에 의해서 형성되고, 심지어 조작된다.“ p 171


“당신의 존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화두, 어떤 글자와 싸우고 있는가?“ p172


[번뇌를 끊지 않고도 열반을 얻는다.]

 不斷煩惱得涅槃


헤르만 헤세.‘싯다르타’


“인간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영혼은 두 개나 혹은 다섯 개 정도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 인간은 백 개의 껍질로 이루어진 양파와 같은 존재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실로 짜여진 직물인 것이다.” (헤르만 헤세, 황야의 늑대)



[개같은 심판의 심판]

-카프카,‘심판’


“니체에 따르면 저항과 거부가 없는 무조건의 순종은 디오니소스적 열정으로 해방되어야 할 생에 대한 모독이다.”p199


[조르바와 함께 춤을]

-니코스 카잔차키스, ‘희랍인 조르바’

 “... 행복한 환상의 잠속에 떨어진 유대인으로 남을 것인가.아니면 대지위의 온갖 쾌락과 고통을 사랑하는 희랍인으로 머무를 것인가.” p 204



[행동의 깊이, 혹은 삶의 깊이]

-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그(헤밍웨이)가 투우, 권투, 수렵, 그리고 낚시 따위에 미친 듯이 열중한 것도

결국 행동의 깊이를 통해서 문학과 삶의 깊이를 느끼려 했던 때문이 아닐까. 심지어 그가 자살한 것도 삶의 마지막조차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채우려 했다는 뜻에서 그 삶과 문학의 일관성을 드러내는 증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p 208


 

"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말라 얼어 죽은 한 마리 표범시체가 있다. 이 처럼 높은 곳에서 표범이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킬리만자로의 눈)


“ 그것은 얼어 죽더라도 정상을 향해 끝없이 발걸음을 옮겨놓고 싶어한 표범의 이야기, 혹은 자살에 이르도록 그 행동의 고독을 피하지 않으려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p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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