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
광명발 새벽 여섯시반차. 동대구 환승후 9시반 경주착.
'김대식'이 쓴 '처용이 있는 풍경'을 텍스트로 삼고자 들고
나섰다.
뜻밖에 '경주' 대신 '보르헤스'의 연인 '델리아'를 기리는 유명한 작별인사를 싣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
우리는 11번가의 모퉁이에서 헤어졌다.
건너편 인도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당신은 이미 돌아서면서 내게 손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자동차들과 사람들의 행렬이 우리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오후 다섯시였다. 그 강이 슬픈 아케론테(무덤이 없는 영혼들이 떠다닌다는 지옥의 강),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리라는 것을 내가 어찌 알았으랴.
우리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 일 년 후 당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보고, 그리고 그것은 거짓 기억이고 그 사소한 작별 뒤에는 영원한 이별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어젯밤 나는 식사 후 산보를 나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유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플라톤이 자신의 선생 입을 빌려 했던 마지막 가르침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것에는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떠난다고 씌어 있었다. 지금 나는 사후에 내리는 통괄적 해석과 멋모른 이별 중 어느 것에 진실이 들어 있는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영혼들은 죽지 않기 때문에 영혼들 사이의 이별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은 이별을 부정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는 작별의 놀이를 하지만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비록 덧없고 우연적이고 덧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어떤 방식이 됐든 불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작별인사라는 것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델리아, 언젠가 우리는 다시 서로 이어지게 되리라. 어느 강가에서? 이 불확정적인 말, 우리는 한때 우리가 평원 속에 묻혀 있는 한 도시 속에서 정말로 보르헤스와 델리아였는지 자문해 보게 되리라.
- 보르헤스
남산, 삼릉쪽으로 금오산을 오른다.
온통 짙은 안개에 시계는 10미터 정도뿐.
바닥만 보고 걷기를 삼십여분
헐벗은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기암 괴석을 마주친다.
바위에 새긴 선각육존불의 일부이다.
아름답다.
머리를 잃은 석조여래좌상 1기.
할말이 없다.
이 땅의 양반 선생몇몇이 사주한 일일 것이다.
예수가 그랬을리는 없지 않은가.
에밀레종 표면, 비천문이다.
이쯤이면 '황홀'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야밤의 빗속을 뚫고 돌아와 씻고 나서 무심히 타월을
들여다 보다 발견한 꽃 문양이다.
멋지다.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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