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유부남 이야기. 마르셀로 비르마헤르

eyetalker 2007. 3. 2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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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이야기.  마르셀로 비르마헤르. 2006년5월문학동네

historias de hombres casados.


단편집이다. 아래는 그 제목의 나열.


마차

굳게닫힌 관에 부쳐

세르비뇨 거리에서

노란스카프

산꼭대기에서

연극연습

세가지 이야기


‘마르셀로‘는 66년생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産· 아르헨티나 하면 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빼먹어서는 안되겠군..


소설은 가볍다. 가벼운 섹스, 예전의 여자, 결혼 전에 넋을 빼놓고 다니다, 이제는 잊어버린 여자. 재회, 그런거다. 전쟁은 끝났다. 평화롭고, 약간의 멍청한 섹스쯤이야. 깊은 친애감만 존재한다면.,..말이다. 굳센 공동의식은 그 다음이고. 아는가? 지금 이 순간 그런 ‘굳센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당신의 타자가 저기 길 건너, 나무 아래를 걸어지나가고 있는지?


마르셀로의 섹스는 가볍기도 하지만, 차라리 귀엽고, 순수한 느낌이다. 왜일까. 


이 땅의 대낮은 기독교, 유교적 윤리의 강압이 낳은 사회관계, 가족관계가 엄정히 지배하고 있는 듯하지만, 해가 서산을 넘어가면, 아니 빌딩사이로 해가 지면,  도시는 낮 시간의 강제된 굴종에 대항이라도 하듯, 검은 휘장을 걷어 제치고 온통 붉은 네온 불을 일제히 밝히는 사창굴로 변하는,  현실의 강박에 지친 때문일 것.


p14

여자들 중에는, 물론 성형의 힘을 빌리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이 처지는 사람과 여전히 봉긋한 사람 두 부류가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성관계나 주변의 온도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변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신체곡선을 의미하는 것이다....리나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버스를 내렸다..


p32

.. 살아가면서 인간이 만든 윤리나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함께하기에 딱 들어맞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p154(산꼭대기에서)

당시 여인의 남편은 여행 중이었고 그 덕에 나는 이들의 부부 침실을 감히 침범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나쁘게 말하진 않았지만 둘 사이가 다소 무미건조하다는 것은 언뜻 눈치 챌 수 있었다. 서로의 배우자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이런 연애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불륜관계를 더욱 불타오르게 하려는  수작일 뿐이다.


p168

왜 여자는 자신을 구타하는 남편을 살해하는 것일까? 집에서 도망쳐 나오면 해결되지 않나? 왜 남편은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하는 것일까? 다른 여자를 찾으면 될 것 아닌가? 나는 변소에서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순간 그 이유를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인이 가장 간단한 해결책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이 없는 세계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히는 그들과 함께 존재하거나 그들을 죽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p173

우리는 말의 침묵조차 묻혀버리는 고요한 세계에 들어서 있었다. 자신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내리지도 못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


p176

고독한 남자들이 식사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문을 읽으며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도 벙긋하지 않는 가족과 식사하는 것 역시 몹시 불편하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p177

남자들은 원할 때 마다 언제든지 섹스할 수만 있으면 어린애처럼 행동한다.


p193

개인적으로 나는 백치미가 있는 여자에게 강하게 끌리는 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지성적이면서 매력은 좀 떨어지는 여자가 싫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멍청하고 예쁜 여자에게 훨씬 더 끌린다.

 

작가는 유부남의 생각의 깊이의 어느 측면을 깊이, 늘, 생각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 ‘유부남‘이란 말 자체가 이미 ’포로‘를 암시하고 있으니 탈출을 꿈꾸다 피살되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유부녀‘도 마찬가지 일 것. 탈주를 꿈꾸는가? 당신은? 하지만, 피살만은 피할 수 있기를. 부디 미끄러운 경계면을 조심하고, 무사히 돌아올(갈) 수 있기를.


‘아르헨티나에서 죽음’은 에피소드, 우화이거나 아니면 삶의 소일거리, 이야기거리, ‘맥주안주로서의 달콤한 조미땅콩’이다.  소설이니까. 재미있다.


마르셀로는 ‘우디앨런‘ 과 ’서머싯 모옴‘을 합친 듯한 글쓰기를 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재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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