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그레이트 게임. 피터 홉커크

eyetalker 2008. 12. 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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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The Great Game.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사계절 2008 8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옆에, 이슬람 시아파 이란과 힌두교 인도 사이에 끼어 밀려 올라가 동방정교 러시아 라는 천정에 갇힌 땅이다. 사막과 산맥, 카스피해와 아랄 해 뿐인 무슬림들의 나라.

 

영국이 동인도회사라는 형식상 주식회사를 통해 인도를 점령통치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자, 러시아는 이슬람 술탄의 땅 이스탄불, 터키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캅카스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건너 인도 접경까지의 세력확장을 기도하게 된다. 

 

양국 정부와 군대의 장군과 장교는 스스로 무슬림 상인의 복장을 한 채, 전인미답의 사막과 산맥을 헤매며 지도를 그리고 정찰하다가, 다수는 각지의 이슬람 지배자, 아미르와 칸에게 붙잡혀 목이 매달려 죽기도 하고, 외세 침탈을 두고 보지 못하는 거친 민족의 총알에 몰살하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모국 영국, 러시아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자원을 가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침탈의 역사가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전개된다.

 

전근대적 제왕권을 행사하는 당시의 독재적 아미르와 칸에게 사로잡힌 민중의 피폐한 삶과 그 체념적 운명관이 마음 시리게 다가온다. 그 영향은 아직도 살아있다. 산간의 소수민족들이 자주 그러하듯, 잘게 나뉘어진 이들 무슬림 족벌간의 뿌리깊은 불신은 민족내부의 단합을 영원히 봉쇄하고 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메리칸 탈레반이 헬기에 태워보낸 글로발 종족으로 구성된 미군 병사들은 아프간 땅을 사로 잡은 진짜 탈레반과 지금도 서로 목숨을 주고 받고 있다.

 

미군의 표찰을 단 한국인 김모도, 중국계 왕서방도,  인도계 굽타 병장도, 레바논계 무하마드도 모두 저 붉은 땅에 총질을 계속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비극의 땅이다.

 

프롤로그

 

1842 6월 아침, 중앙아시아의 도시 부하라의 아미르 궁앞 커다란 광장에 누더기를 걸친 두 사람이 흙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 손은 뒤로 묶여있었으며, 몰골은 초라했다아직 중세를 벗어나지 못한 이 외딴 카라반의 도시에서는 처형이 별다른 관심을 글지 못했다….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타오르는 한낮의 태양 밑에서 처형자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두 남자는 영국 장교들이었기 때문이다

 

P 125

 

은 자신이 술과 담배를 끊은 뒤에 그 두 가지를 금지했는데, 걸리는 사람은 입을 귀까지 찢는 벌을 받았다. 그런 벌을 받은 사람의 얼굴에 영원히 박힌 미소는 다른 사람들에게 섬뜩한 경고가 되었다.

 

 

P 180

 

그러나 아프간 사람들이 분열상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러시아 사람들은 약속이나 유인으로 그들을 이간질 할 것이다

 

P 194

 

알렉산더 번스의 이름은 늘 부하라와 연결되지만, 사실 그의 이름은 카불에 속해있다. 그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묶인 곳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와 그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번스는 1832년 봄 처음 방문하자 마자 이 도시를 사랑하여 이곳을 낙원에 비유했다. 과일나무가 우거지고 새들이 날아들어 노래하는 수많은 정원을 보면서….

 

P316

 

브로드 폿 소령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해, “ 도시의 개들이 그의 사체를 뜯었다.”..

브라이든은 카불을 떠난 16천명 가운데 그 끔찍한 길을 통과하여 잘랄라바드에 무사히 도착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P 370

 

.. 그러나 영국의 아킬레스건이 인도라면 , 러시아의 아킬레스건은 이슬람 부족들이 차르의 권력에 대항하여 사납게 버티고 있는 갚카스였다.

 

P381

 

..1858년 알렉산드르는 이미 고속승진으로 주목받던 이그나티에프에게 중앙아시아로가는 비밀사절단을 이끄는 임무를 맡겼다. 그의 과제는 영국이 정치적. 상업적으로 이 지역에 얼마나 침두했는지 파악하고, 그들이 히바와 부하라에서 얻은 영향력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P405

 

186852일 사마르칸트는 러시아제국에 흡수되었다. 러시아의 전사자는 두 명, 부사장자는 31명이었다. 러시아에게 사마르칸트 함락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거의 500년 전, 몽골의 위대한 지도자 티무르가 바로 이곳에서 러시아를 향해 운명적인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중앙아시아 사람들도 그 항복의 의미를 이해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압도적인 심리적 효과를 발휘하여 러시아는 불패라는 인식이 점점 강해졌다.

 

P 477

 

..인도야 말로 차르의 궁극적인 목표물이라고 경고했다..

 

P 481

 

1875년 여름 술탄의 영토인 발칸의 한 주 헤르체고비나의 외딴 마을에서 터키의 통치에 대항하는 봉기가 발생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봉기는 그곳에서부터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연발생적인 운동이었는지, 아니면 러시아의 음모의 결과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1876 5터키의 비정규군이 유혈의 광기에 사로잡혀 불가리아의 기독교인 12천명을 살해했다.

 

P 489

사태는 급진전 했다. 서둘러 모은 35천의 영국군들은 세지점에서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입했다. 영국군의 첫 번째 목적은 카이베르 고개, 잘랄라바드, 칸다하르 점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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