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마하트마 간디

eyetalker 2005. 11. 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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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오늘도 마찬가지였지만, 출근할 때마다, 고상한 척하면서 말하자면 "의식의 의식적 전환"노력이 필요합니다. 두 눈의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장면'- 이 것은 어떤 극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과 자주 마주치게 되고 이렇게 되다보면 일부러라도 시선을 45도쯤 상향조정하던가, 시계를 들여다보든가, 아니면 지하철 창유리에 비친 기괴하게 생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해야되는 것이죠.

짧은 소매의 하얀색 셔츠를 걸치고 등이 굽은 채 땡볕속을 걷는 허약한 모습의 할머니를 뒤따라 걷는 순간에는 생겨나지 않는 그런 '의식'을 말하는 겁니다.

사무실 근처를 걷다가 자주들리는 빵집과 맥주집옆에,밑으로 뚫린 구멍이 있어 들려다보니, 그 곳은 자그마한 서점이었습니다. 위태롭게 생긴 계단을 따라 내려가 진열된 책들 중에서 간디의 자서전을 골랐습니다.
'함석헌 옹'이 번역을 했더군요.

그의 위대성에 대한 논의는 별달리 할 생각이 없지만, 그의 자서전을 읽다보니, '간디란 사람, 참으로 순진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또한,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는 결론아닌 결론을 내릴 수 있더군요.

영국의 지배를 받는 인도사람으로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대영제국이 벌인 각종 전쟁에, 인도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아직은 제국의 신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며 참전한다든가- 물론 수많은 인도인들은 그의 이런 행동을 격렬히 비난히죠-, 나중에는 영혼의 휴식을 위해 매주 월요일은 일절 말을 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든가, 정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끝내 부인과의 부부생활을 포기하기로 하는 금욕맹세를 지킨다든가하는 각종 일화를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겠죠.

젊은 시절의 간디는 마침 남녀간의 육체적인 사랑에 눈이깨었든지, 부친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맬 때, 부친의 간호를 하다가 그가 잠시 잠든 사이에, 부부의 침실로 돌아와 이미 잠든 부인을 깨워 정욕을 채운 적이 있다고 실토하고 있군요. 그 사이에 그의 부친이 절명하는 바람에 그는 부친의 임종을 다 하지 못하게 됩니다.

몇번인가 사창가 또는 그러한 장소에 본의 아니게 가게 되어 음탕한 짓에의 유혹을 받게 되나 그는 끝내 이를 물리치게 된 것에 대하여 하느님의 가호때문에 벗어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서전의 주제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정욕의 문제'로 간디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읽다보면 '위대한 영혼'으로서의 그가 훨씬 가깝게 다가옵니다. '인간 간디'가 말입니다.

그는 好色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저한 자기검토와 하나님앞에 항복, 그라고 은총'이 필요하고 또한 '음식의 절제와 단식'할 것을 제안합니다. '육욕적인 마음은 감각을 통제하기는 커녕 그 노예가 되어버린다.그렇기 때문에 몸에는 언제나 깨끗하고 자극적인 아닌 음식과 주기적으로 하는 단식이 필요하다' (그는 나중엔 과일만 먹는 생활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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