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내생에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eyetalker 2005. 11. 2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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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나이는 마흔하나 또는 마흔 둘인가 보다.
꼭 내나이다.

읽어나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 그렇게 나이 많아 뵈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려뵈지도 않는군. 사진을 뒤쳐보니, 작가의 얼굴은 도회적 인상에 약간의 누추-나이듦의 누추-가 혼합된 듯한 인상이다. 그보다 두살어린 어떤 여자보다 딱 두살더 많게 생겼다.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지리멸렬한 삶의 가랭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 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은 통속적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지는 모른다. 수많은 잔가지와 그들 특유의 문체들을 솎아 갈아끼는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소설은 중간에 손을 떠났을런지도 모르겠다.

독자인 나는 장편이라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소녀들의 문체가 눈에 걸리면 움찔움찔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이면서 몸을 뒤척인다. 중간쯤 어딘가에서는 그녀의 문체가 좋아지기도 했다. 소녀적 취향, 여성적 흥취를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억제하였다는 느낌이 든다.그래도 스며나오는 부분이야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나열한 부분은 어쩐지 어색하게 여겨졌다. 너무 적나라하다. 나는 막말하는 여자들이 싫거든. 이 여자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가슴속에 벌써 보따리를 싸놓고 있다. 그럼에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어 읽기가 괴로웠다. 여자는 그후로 생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채이다가 우연한 그 아무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나중엔 그 우연한 사랑에 중독된 듯한 행태를 보인다. 나쁘게 보이지는 않는다.여자의 친구들도 거의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작가의 언급대로 '지리멸렬'한 일상의 그 의미없음에 절망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그 아무에게 연정을 느끼고 메달린다. 생은, 하루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무언가 내안의 펌프를 돌리기 시작한다.

있을법한 일이고 비난할 수도 없다.

그 대상은 사실상 그에 다름아닌 아무나이다.그 아무나와 결혼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낳고 살더라도 그런 일은 반복될 터이다.

그 상황에서 작가는 또 다른 아무나를 들이밀고 그의 행동,생김,입장,상황을 로맨틱하게, 사랑할 만한 무엇이라고 꾸며될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다. 그 이상 무었을 기대할 것인가? 사람이란 다 그런것이다.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한 원인의 작위가 너무 치나친 것은 아닐까? 너무 앞으로 쏠렸다. 균형을 잃었고 그래서 어지럽다. 차라리 보다 평범한 원인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러면 다큐멘타리가 되나?

그래도 이런 느낌만으로도 작가는 일정부분 성공했다는 생각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소설의 시대는 오래전에 끝이났다. 소설은 영화처럼 직접적 화법으로만 대화하는 장치에 완전히 스펀지에 빨리듯 싹 흡수되어버리고 말았다. 슬프다.

그러나, 이런 소설을 읽느니 보다, 톰 존스나, 알리샤의 일기쪽이 훨씬 더 '소설읽음'의 즐거움과 풍만함과, 충족감, 황홀감을 더 많이 긁어 모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제는 소설도 가려읽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ㅈㅣ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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