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讀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eyetalker 2005. 11. 2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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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 이현.

단편집의 껍질에는 작가의 예쁘장한 표정을 찍은 붉은 색 바탕의 사진이 있는 띠가 둘러져 있었다. 소설의 작법과 내용과 메시지로 승부해야지 이 무슨 작태인가? 나는 과감히 띠를 풀러 휴지통에 버린다. (순간적으로 작가는 이 일에 동의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아마 출판사의 상술이 작동했으리라. 이쁜 여인에는 누구나(적어도 타성은) 혹하게 마련이고 그래서라도 책이 잘 팔리면 작가나 출판사에나 다 윈윈 게임이니까말이다.) 사실, 둘러져 있는 띠는 귀찮은 물건이다.

좋은 평가를 하였기에 실리게 되었겠지만, 권말에 실린 평론은 “이제 정말 2000년대적인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비약인 듯하지만, 굳이 상찬한다는데, 이 정도의 표현이 라면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을 정도는 된다. 90년대, 40대 중년 여류작가들의 징징거림이나 과감을 아슬아슬 작위한 김새는 소설집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쥐어짜던 90년대의 여류소설가들은 갔다?

마치 소설의 외피를 빌린 르포나 다큐멘터리인 듯한 느낌도 들고, 아니면 사회면을 장식하는 각종 현대적 성깔등과 그 사건들을 빌어다 소재로 삼은 듯하면서도 소설이라는 바운더리를 잘 지켜내고 있다. 오랜만에 별다른 반감없이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시간 침대위에 누워 읽으면서도 그리 빨리 잠들지 않았다.)

여덟편의 단편들은, 어떤 젊은 여자인 화자의 입과 일상을 빌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데, 물론 성, 연애, 요즘아이들의 아슬아슬한(위선에 절은 노땅들이 보기에만), 익명을 마음껏,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살아가는 내용들이다. 황당한 면은 별로 없고, 독자의 일상이 지나치는 하루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져있어서- 실제이든 판타지든, 그러니까, 독자의 뇌가 입으로 내뱉지는 못하되 무의식, 잠재의식 같은 것으로는 항상 빙빙돌리고 있는 그런 삶의 각 단면- 화자의 행보나 생각의 주절거림에 별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그저 시큰둥하면서도 동의 정도는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의 결혼습속, 정석처럼 행동하는, 그렇게 되어버린, 가정생활속의 등장인물들-읽어보면 안다-은 도대체가 너무나 뻔해서 그런 것들을 소설로 옮긴 작가가 너무 통속적이고 무신경해 보이는 면도 있다. 그러니까 다 아는 뻔한 내용을 순전히 작가의 손가락 능력만으로 이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독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너무 빤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미장없이 그대로 옮겨 놓으면 속이 찔린 듯해서 좀 신경이 비틀어지는 법이지만, 동시에 독창적 글쓰기, 그 분위기에도 잘 현혹되는 법이기도 하다. 너무 잦으면 곧 식상하게 되겠지만.

여자들이 자주 빠져드는(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동성애 경향, 순진성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닳고 닳은 여자애의 연애심리 (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확고한 현실의 부름, 여기에 반항하는 자는 원래 좀 모자라는 애, 아니더라면 나중에 필연 후회하게된다.) 남자를 거론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자는 그 보다는 쫌은 더 나은 족속이란 뜻은 결코 아니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 연애와 성행위를 거쳐 결혼에 이르는 과정 - 아마 제목에 포함된 “사회”라는 단어의 필요성이 직접적으로는 여기서 나온 것 같다-등등이 비교적 진지하게 소설화 되어있다. 농담 끼도 전혀 없어서, 소금간이 거의 없는 닝닝한 물국수를 먹으며 잡지를 읽어가는 기분이 든다. 73년생 작가라 그런지 노털들이 습관적으로 써먹는 70,80년대의 회고적인 기록이 전혀 없어 관습적 공감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 더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국 소설 200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지는 잘 알아볼 수가 없다.
제목이 그를 듯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 ’계산적 사랑과 오해’.

2004년 여름,ㅈㅣ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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